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osi Jan 25. 2024

○○,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남이 대신 살아주지 않잖아요.

((내가 차 밀릴 때만 하는 생각))


염세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우울! 하면 orosi인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나?

저만 환자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다.

위로만으로는 도통 마음에 차지 않아하면서도, 어째서 매번 다짜고짜 전화부터 하는건지 의아하다. 정성을 다해 고객을 모시고 뺨 맞는 격. 졸지에 감정 노동자가 되기 십상이다.


박OO씨! 이거 누구같아?


글을 보여줘도 보고 싶은 내용만 보는 초능력까지 겸비한지라.. 어찌보면 뒤끝 없어 좋은 친구랄까?

남편이 매달 척척 거금을 손에 쥐어주지, 자발적 비임신 인생이라 얼마나 가뿐하냐고! 막말은 삼간다.

누구나 나름의 고뇌는 품고 사는 게 인생이니,

남의 삶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 밀 이유있나.


우울은 새롭지만 결코 새롭지 않은 감정상태다.

우울하다는 변명으로 '나를 돌보고 남을 살피는 데에' 소홀하도록 허락 받는 사회. 매번 이해란 걸 상대에게서 받아내야만 성이 차는 이에게 적당한 처방이란 곤란하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 괴롭고, 내 삶이 가장 빡세다보니 모두가 나를 위안하고, 열렬히 북 돋아야 마땅한 이들이 꼭 있다.


외로워서 괴롭고, 남이 잘 나가니 쓸쓸하단 건.


누구의 결정일까?자기 주도적 비교에서 출발하니  괴롭긴 하겠다..


남이 나를 인정해 때에자신의 가치가 고양 된다면 이 얼마나 가난한 삶인가.

자기 만족에 게으르거나, 적당히 만족하는 행위란 그저 저급한 것일까? 스스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면 안 될 까닭이 어디에 기인한 마음일!

 

판단을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다. 남의 권위에 의지할 때에만 성과를 인정하다보면 나만 괴롭고 끝나질 못한다. 이것이 가장 큰 난제. 곁의 인연들이 지쳐 기어이 나가 떨어지고야 마니까.


 정도면 잘 하고있다는 반증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디 남이 찾아주기를 기대하지말고, 한 번쯤 스스로를 향한 격려를 동력삼기를 바란다.

각자 나름의 일상을 사니까. 남이라고 덜 빡세고 덜 괴롭지 않다는 사실도 적당히 챙겨가기를. 


체면,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렇게 하면, 지금의 나도 예쁘고.

주변인도 한결 더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8시간 후, 집 나갈 준비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