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왜 하세요?(2)

과일자급형: 남의 돈 벌어 먹고살기

by orosi

목적 둘. 과일자급


생계 말고도 내가 열심히 돈을 벌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과일이다.

과일을 지나치게 좋아하는데 입가심으로 두어 개 집어 먹는 수준은 아니다.


어릴 적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면 식구들 식사 시간에 나는 절대 밥을 먼저 먹지 않았다. 우선 포도나 사과, 딸기 등 가족들과 절대 나누고 싶지 않은 과일부터 구석에 앉아 양껏 채워 넣었다.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소리씩 퍼 붓던 부모님도 해를 거듭하며 으레.. 우리 둘째는 밥보다 과일이려니 하셨다.



대학 때 집 떠나 혼자 지내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자취생이 주말이면 본가에 와서 샴푸고 치약이고 주섬주섬 챙기는 심리처럼, 하나같이 내 돈이 나가는구나 체감하는 것. 과일 탓이다. 가만보면 시누이들이 시댁에 오면 밑반찬뿐만 아니라 양파며 참기름이며 ... 무슨 저런것까지? 사양없이 두 손 가득 챙겨가는 풍경. 죄다 익숙하다. 비슷한 듯 다르다. 나는 오로지 과일에만 집중.)

부모 그늘을 벗어나고 '홀로움'의 그늘이란. 어디에도 먹어도 좋을 과일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내 손으로 사 먹지 않으면 이놈에 과일 욕심을 채울수가 있나. 그래서 시작한 게 알바다. 일해서 번 돈을 쪼개어 열심히 과일을 사 먹었다.

"이번 생일, 받고 싶은게 뭐야?" 라는 남친의 질문에 기숙사로 일주일 세 번 과일팩을 배송받는 획기적인 '연간 생일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랬다. 받고 싶은 건 과일.




외곽의 막국수집에서 후한 페이를 제안하는 종일 알바 광고가 떴다. 의심의 여지따위 없이 기꺼이 팔을 걷어 부쳤다. 아싸. 열심히 돈 벌어서 원 없이 사 먹어야징~~!


8시간 꼬박 자갈밭과 방갈로 형태의 룸을 오가며 막국수를 날랐다. 나름 체력에 자신있던 나도 점심 피크 장사와 저녁시간을 거듭하고 나니 죽을 맛이었다. 이건 발바닥이 부은건지 종아리가 부은건지 감각을 찾을 줄 몰랐다.

그 날도 한 손에 조생귤을 잔뜩 사 들고 들어왔다.(천원이면 귀여운 조생귤을 열 네개씩이나 담아주니 3천원이면 충분하다. 이정도면 손바닥만 노래지는 건 아니다.)


기숙사로 돌아 오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가 보고싶었던 건 아니었고, 괜한 투정이라도 내 보려던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아빠 , 있잖아. 나.. 오늘 엄청 힘들었어.
지금 걸을 힘도 없어.'


라고 말하려다 관뒀다. 감정과 고단함만 쏙 빼고 최대한 씩씩하게.


오늘 간 곳은 진짜 아후~ 음식 만드는 곳에서 손님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하필 자갈밭을 걸어야 하는 거 있지. 그러고는 그 쟁반을 들고 계단을 올라야 사람들이 있어. 그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거길 다시 내려와도 또 자갈밭을 걸어야잖아?

장난 아니지? 아. 진짜.


혼자 실컷 떠들고 나서 혹시라도 울아빠가 에구구 우리 딸... 해주면 실컷 울어나 볼까? 라고 생각했을 나는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마도 아니었을 나다.



남의 돈 벌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줄 알어?




역시. 우리 아빠.

빡세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

덕분에 그날도 짧게 울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말은 진리다.

전투알바를 그 후로도 계속 했었다. 장어집, 화장품회사 비서, 외국인교수 보조채점, 롯데리아 등등


어느 한 곳에서도 쉽게 남의 돈을 벌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생계를 위해, 과일을 위해 일한다.



더이상 이 두 가지가 우선순위가 아닐뿐더러

일의 목적이 그 밖에도 여럿 있지만 일이 힘들 때마다 알바생 시절을 떠올린다.

어렵지 않게 그 시간을 보냈다면 소중한지 몰랐을 지금의 모습.


그때의 기억으로 나는 음식점에 가도 예를 다한다. 이왕이면 이해한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를 떠올리면 조금 설렌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천천히 늙었으면 참 좋겠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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