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아이가 태어나고 수면 리듬이 생긴다는 100일이 지나곤 한결같이 우리 집은 7시 30분이면 소등이었고, 신혼때라고크게 다를게 없었다.
늦어도 9시면 몸을 누이는 남편은 연애때도 주말아침 6시 40분이면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어 조조영화 시간을 친절히 확인시켜 준 사람이다. 철저하게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웠던 사람과 어떻게 사랑을 하고, 어떻게 10년을 넘도록 한 집에서 살았나 그도 그렇고 나도 대견하다.
밤이랄 게 로맨틱하거나 풍요로울 기회가 없었다. 우리집에서 야식이래 봐야 7-8시를 넘기는 일은 손에 꼽고 밤산책, 야경, 치맥 등 남에게 자연스러울 일상도 대체로 내게낯설었다.
특식을 차려주는 마음으로 아빠가 늦는 날이면 일부러 8시가 넘는 시간에 텅 빈 놀이터에 아이들을 데려가 그네를 태운다. 첫째를 데리고 둘만 머무는 밤책방에 가서 10시고 11시고 마음껏 책을 읽는 까닭도 같다. 심지어 요즘은 아빠가 잠들면 자는 척을 하던 아이가 살며시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눈을 찡끗 한다. 조금만 더 책을 읽다 자겠다는 애교다. 우리 집이 이렇다.
해가 지고 하는 산책은 꿈도 못 꾸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도 9시면 빛을 찾기힘든 집에 살지만.
남들의 것을 누리지 못했기로서니 마음마저 깜깜하진 않았는데.
2019년의 여름밤은 내내 철저하게 몸과 마음이 칠흑같았다.
둘째 아이가 고작 8개월 젖먹이 시절.
첫 수술을 치렀다. 그 후 3개월이 꼬박 여름이었던게 아직도 가끔 억울하다. 강보라고 부르던가?
영아들이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어 제 얼굴에 상처라도 낼까. 움찔움찔 제힘에 놀라 잠에서 깰까 봐 생후 몇달간은 넓고 얇은 아기보(강보)로 몸을 감싸 재운다.
손은차렷자세. 나름의 방식으로 싸매두는게 아가에겐 더 안정감을 준다고 조리원 베테랑 선생님들께 받아적으며 배웠다. 해서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초보엄마들이 곧잘따른다. 나 역시 첫째도 둘째도 그렇게 키웠다.
수술 후 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둘째는 통증과 이물감에 쉼없이 울어댔다. 피눈물과 고름만이 문제라면 불을 끄며 내 슬픔도 덩달아 꺼보련만.
"엄마~"라는 단어보다 먼저 알아버린"아파~"라는 말이 자꾸만 아빠~로 들려 남편은 "아빠 아파"라는 말이 가슴에 덧 새겨있다고 했다. 아이의두 손이 자꾸 닿지 말아야 할 수술부위로 향하고 괴로움에 우느라 밤이면 삼킨 젖도 다 토해내기 일쑤였다.
이럴땐 눈물이 다른 구멍으로 나와주면 좋으련만.
아픈곳이 눈인데'하필 눈물은 왜 눈에서 나오냐고'말 같지도 않은 원망으로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바짝 말려도 될까말까한 환부에서 밤새멈출 줄 모르니 기어이 나도 따라 울었다.
수술은 아이에게 '안 간 힘'을 선물했다.
강보로 싸놓는 것으로는 안전하게 긴긴밤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당시 수갑 역할을 제대로 못해낸 죄로 현재까지 아이들 목욕수건으로 쓰임받고있는 그것들
보호안경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영아의 강력한 '팔버둥'(우리에겐 발버둥못지않게 두려운 그것).
결국 남편과 나는 힘없는 강보대신 밤새 수갑의 역할을 해내야했다.
왼손은 남편. 오른손은 나.
아프지말라고 아픔에 아픔을 더하던 수갑, 핏대선 부모의 손
돌도 안된 아이의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팔을 지키는 일이 이 아이의 두 눈을 지키는 일인 그때.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손을 지켜내려면 아무리 어른이라해도 두 손을 모두 써야했기에모로눕기만 해야지. 감히 우리에겐 뒤척임이나돌아 눕는 일이란 허락되지않았다.
손만 저리면 다행인데 한쪽 몸이 통으로 저린 날이 반복되었다. 어떤 날은 남편이 기어이 나를 깨워 피곤에 절어있는 몸을 일으켜 자리를 바꾸어 눕기도했다.
행여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싶어 거실 에어컨을 틀어두고 빼꼼 문을열어두는 건 부모사랑. 단 며칠 만에 관뒀다.
첫째는 멀찍이 바닥에 혼자두고, 넓은 침대를 두루 쓰질 못해도억울할 것 없이, 우리 셋만은 몸을 밀착해야 인간 수갑을 채울 수 있다. 거리를 두면 조금 덜 더울까 싶어 뻗어라도 보지만 제아무리 팔이 길어도 더위를 달랠 방도가 없다. 아니, 팔을 펴면 곤란하니 안방 에어컨도 틀자.
해보면 알겠지만 모름지기 부모는 팔을 길게 뻗으면 안 된다. 자칫 깊은 잠이들고야말면 그 팔에 힘이 덜들어간다. 그나마도 바짝 붙어 각을 만들어야 순간적인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다.(특수상황에 터득한 쓸모를 잃은 노하우입니다만)
그 아이는 얼마 전 더 고약한 수술을 치렀다.
정말 다행히도 이번에우리 부부가 감내한 밤은 춥디추운 겨울밤이었다. 수갑을 채워도 땀띠만큼은 나지 않는 겨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