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일 들 중 여섯. 답을 밖에서 찾지 않기.
원가족 안에서 문제가 생길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논을 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는 했다. 지인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들을 주기도 하고 혹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의견을 주고는 했다. 배우자에게 물었을 때도 진지하게 배우자의 가치관과 생각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해 주었지만 나는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배우자는 의견을 묻는 나에게 ‘ 어차피 당신 마음대로 할 거니 대답 안 할래.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 지점이 서운해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 마음을 상대가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폭풍 같은 상황 속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 보니 배우자 말이 맞았다.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나는 상대가 내가 찾는 답을 말해주길 기다렸다. 상대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답을 구했지만 사실 나는 상대가 말하는 답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물’이라는 내가 생각하는 답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우유를, 누군가는 주스를, 누군가는 커피를 말해줄 때마다 나는 답으로 물을 말해주길 기다렸다. 왜 물이 필요한지 상대가 말해주길 바랐다. 물이라는 답을 이미 내 안에서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문제를 의논하는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답은 답인데 그게 답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꼴이었다. 답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걸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답을 듣고 내 마음이 맞았다고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 답을 스스로 내리는 게 어려웠던 걸까? 이런 물음들이 나에게 가득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내 안에 있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수학 문제 푸는 법을 가르치면서 나는 나의 문제를 깨달았다.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 문제의 답을 아이는 낑낑대며 풀고 있었다. 아이의 성향상 혼자 하려기 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라 조금 풀고 나를 쳐다보고 또 조금 풀고 틀린 곳이 없는지 나의 눈빛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니 스스로 끝까지 풀어보고 틀린 게 있다면 그때 다시 고치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풀이과정과 답은 답지에 있지만 그걸 옮겨 적는 게 공부가 아니라 네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며 생각하고 너만의 문제 해결방식을 찾아 푸는 게 공부라고 나름 거창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빨리 풀고 놀고 싶다고 투덜대며 속상해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켜보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나는 내 문제를 풀 때 그렇게 하고 있는가? ‘
인생의 여러 문제들도 수학 문제와 같았다. 답이 없는 문제 같아도 어떤 문제든 풀이 방식과 답이 있다. 그 풀이방식과 답은 저마다 자기가 살아온 방식, 가치관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답지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형제들이 경험한 가족과 양육된 환경이 같다 해도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정해진 답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는 허무함을 느꼈다. 마치 불가능한 일을 해내야 한다고 믿으며 나를 몰아세운 꼴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올바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 답을 택했을 때 어느 누구도 답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답을 원했다. 그런데 그런 답이 유니콘 같은 거였다니...... 허무했다.
힘든 삶의 과정과 문제를 털어놓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답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참고할 수는 있었지만 내 해설집에 들여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대로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답지에 동조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 내 답이 맞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뿐이다. 간혹 높은 비율의 답을 만날 때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다. 막상 내 안에 답을 들어도 또 의심했다. 정말 내 답이 옳은 걸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또다시 내 마음의 답을 제쳐두고 검산한다는 명목으로 답을 쓰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나의 답지에 타인들의 답들을 잔뜩 적어만 놓고 정작 나의 답을 적지 않고 계속 비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풀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으니 다음 문제는 엄두도 못 냈다.
아이에게 가르쳤던 그 내용을 정작 나는 하지 못했다. 문제를 스스로 풀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푼 문제가 맞지 않을까 봐 두렵지만 답을 맞히는 과정, 맞으면 그것을 믿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틀렸다면 어디서 틀렸는지 다시 돌아보는 것. 이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이들의 조언, 책, 강의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알아가면 되는 거였다. 나의 답이 다른 사람들과 틀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내 해설집이 수학답지처럼 전 세계 누가 봐도 맞는 답지였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누가 보기에는 엉터리에 말이 안 되는 것이 나에게는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처럼 이 세상 다양한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답지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문제들은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다.
그렇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기만의 답지를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해답지. 그러기 위해 나는 내가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야겠다고 결심했다.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