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분을 기리는 밤.
자정이 훌쩍 넘었음에도 신기할 정도로 골목마다 사람이 적잖았다. 아 성탄절이지. 늦은 시간 함께 집으로 향하는 연인들을 보며 새삼 성탄절을 실감했다. 순간 너무 자연스러운 연상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요셉과 마리아도 밤이 늦도록 방을 찾아 헤맸다고 하니 이만큼 자연스러운 연상도 없구나 싶었다.
주택가를 나와 도로로 나가니 사람이 더 많았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또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을 보다 마냥 낯설지 않은 곳이 있던가 싶었다. 학창 시절을 모두 보낸 동네를 가도 내가 걸었던 거리가 아니라 오래전 즐겨보던 드라마의 풍경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시점은 뒤섞인다. 직접 걸었던 길이고 겪었던 일인데, 떠올려보면 꿈에서 본 듯 일인칭과 삼인칭이 혼재되어 있다. 나는 길을 걸으며 걷는 나를 본다. 지켜보는 시점은 당연히 허상이니 달라질 만도 한데, 이미 편집이 끝난 영상처럼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건 꿈에서만 겪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꿈과 기억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럴수록 기록에 집착하고, 과거를 남기다 현재를 놓치곤 한다. 한 걸음씩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반보만 걷는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또 좁게 걸으며 동시에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일하는 점원들이 있었다. 심야 버스를 운전하고, 햄버거를 만들고, 편의점을 지키고, 술잔을 나르고 테이블을 닦고. 누군가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해 평소와 다름없이 혹은 더 바쁘게 성탄절을 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요정이 아닐까. 요정이라는 단어가 과한 미사여구 같다가도, 하긴 성탄절은 원래 그런 날이지 싶었다.
키오스크는 묵언수행을 위한 기계 같았다.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으로 주문하고, 번호가 뜨는 모니터를 지켜보다 픽업테이블에 나온 햄버거 봉투를 들고나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늘고, 말을 할 일은 줄어만 간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성탄절이 지나간다. 하긴 내게 성탄절은 원래 그런 날이지.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러 돌아보니 술에 취한 듯한 일행 서넛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껏 웃으며 급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골목 안쪽엔 빵이 든 종이가방을 든 커플이 앞에 있었고, 그보다 앞으로 패딩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모습이 똑같은 엄마와 아이가 바삐 걷고 있었다. 골목을 지나 코너를 돌자 한 손엔 포장된 패스트푸드를, 다른 손엔 작은 캐리어를 쥐고 어느 집 이층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새로운 이벤트가 생기면 NPC들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게임이 있었다. 성탄절이어서일까, 마주치는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을 들고 새로운 이벤트를 기다리는 듯했다.
모든 풍경을 지나쳐 도착한 집은 고요했다. 옷에 붙은 한기와 소란을 털어냈다. 허기를 달래려 가볍게 나갔던 외출인데 너무 많은 사람을 보고 왔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분을 기리는 밤. 아무것도 적지 못한 문서창에 홀로 요란한 커서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안에 혼자 있다. 그런 나를 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도무지 이 꿈은 깰 생각을 않는다.
2022.12.24.2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