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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Oct 07. 2015

며칠째 잠만 자고 있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며칠째 잠만 자고 있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일에 일을 반복했지만 폐만 끼칠 뿐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할 때마다 숨이 막히곤 했다. 원통에 해적 인형을 넣고 튕겨 나올 때까지 칼을 꽂는 놀이처럼,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이 계속해서 더 악화되어 갔다. 칼을 꽂는 건 나였다. 내 실수, 잘못, 실책, 실착, 실례, 과오, 무능, 무력, 자책, 자괴, 송구함, 미안함, 죄송함, 부끄러움, 면목없음, 그 많은 칼이 꽂히고도 튕겨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음.

제대로 못 잔 날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어느 날. 새벽에야 집에 들어와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다 실수로 파일 하나를 날렸다. 별 것 아니었다. 두세 시간이면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지난 몇 달 해온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한 번 터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고작 두세 시간 작업하면 되는 자료 때문인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던 타 부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서인지, 최선 그 이상을 했는데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낸 자신의 무능함이 원망스러워서인지, 결재란에 사인을 하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않던 상사의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막연히 울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이 났다.

책상에 엎드려 울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오래지 않아 깼지만 비척대며 침대로 가 다시 잠들었다. 눈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잠으로 채우려는 듯 긴 잠을 잤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동시에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몇 신지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눌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된 듯했다. 그래서 알람도 울리지 않았구나. 울렸는데 듣지 못한 건가. 충전을 안 했던가. 지금이 몇 시지 회사에 가야 하는데. 전화가 왔을 텐데 전화 소리도 못 들은 건가. 작업 끝내서 넘겨줘야 하는데 민폐도 정도껏이지 또 늦으면 안 되는데 연락이라도 미리 해둘까. 파일을 누구에게 보내야 했지 이거 끝나면 다음에 뭐해야 하더라 다들 출근했겠지 어서 넘겨줘야 다음 작업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아무렴 어때.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졸리다. 잠이 계속 고팠다. 따뜻한 이불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 두꺼운 커튼에 가려진 창문. 모든 것이 길고 깊은 잠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자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번 잠이 들고 깨길 반복하면서 현실의 고민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채 가지 않았을 수도, 며칠이 지났을 수도 있다.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고장 난 부품이 빠져나간 듯 더 잘 돌아가고 있진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진작 이래야 했는지 모른다. 차라리 잘됐다. 이제야 모두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방안엔 빛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몇 번 작게 뒤척이고, 몸과 침구류 사이의 경계를 흐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 목이 말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조차 없는 잠이 이어지며 현실도 몽롱하고 흐릿하기만 했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롭기까지 했다. 탁자 위에 물병을 집어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영원히 잘 수는 없을까.


사진 : Evan Sto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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