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이 Dec 11. 2015

그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방 전체가 물고기 없는 어항 같았다.

그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간 그의 방에서 난, 물고기 한 마리 없이 텅 빈 어항을 보았다.

방 전체가 물고기 없는 어항 같았다. 사람뿐 아니라 생활의 흔적조차 없었다. 현관 들어서 바로 왼편에 놓인 냉장고엔 반이 조금 넘는 생수 한 병만 들어있었다. 그 옆에 붙은 작은 싱크대는 깨끗했고 가스레인지는 호스조차 끊겨 있었다. 싱크대 위아래 달린 찬장도 빈속을 드러냈다. 현관 맞은편 창가엔 이불과 베개가 침대 없이 바닥에 단정히 깔려 있었다. 창의 대부분을 가린 블라인드 아래로 들어온 햇빛이 사람 대신 이불 위에 길게 누웠다. 부엌 조금 앞 왼쪽 벽엔 창가 쪽을 바라보는 의자 하나와 식탁치고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 위에 어항이 놓여 있었다. 시계 하나 없는 방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어항 안 공기 방울뿐이었다.

쉴 새 없이 홀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공기 방울을 보며 저 아래엔 누가 있기에 저렇게 힘겹고 외롭게 숨을 내쉬는 걸까 생각했다. 어쩌면 마술이라도 하듯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테이블 아래에 그가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전화를 걸면 어항 아래서 벨이 울리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꺼내 들었지만 화면조차 켜 보지 않은 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숨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 사고라도 당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고. 생각해 보면 그의 어머니조차 모르는 일을 연락이 끊긴 지 1년이 넘은 내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그의 실종보다 그의 어머니께서 왜, 어떻게 내게 연락을 하신 건지가 더 궁금했다. 도대체 왜 난 그를, 혹은 그와 관련 있는 무언가를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물음표만 그려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또 이런 식이구나. 감정은 갑작스레 차올랐고, 난 무리한 잠수 끝에 숨이 가빠 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처럼 서둘러 그의 방을 나왔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거대한 공기 방울 하나가 터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민법에서는 실종선고를 받은 사람이 5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으면 사망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5년은 법이 정한 사람의 사회적 방전 기간인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충전하지 않으면 그대로 전원이 꺼져버리는 시간. 시간은 늘 나보다 한발 뒤에서 걷는 듯하다 어느새 겨우 보일 만큼 저만치 앞에 가 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급히 뛰어야 했다. 그렇게 또 5년이 흘렀다. 그의 방을 찾아갔던 그 날 이후, 난 그와 관련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가 확실히 죽은 건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그는 누군가를 만나 새롭게 충전했을까, 아니면 그대로 사회적 전원이 꺼져버렸을까. 나는 그가 여전히 방에 놓인 어항 아래서 외롭게 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사진: Kristaps Bergfelds

작가의 이전글 얕게 쌓인 첫눈이 모두 녹아내리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