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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Dec 18. 2015

물에 적셔 얼린 솜으로 가슴을 메운 것 같다.

시간은 계속해서 느려진다.

물에 적셔 얼린 솜으로 가슴을 메운 것 같다. 멍청한 짓인걸 알지만 머리끝에 매달리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다.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혹시 다른 여자와 함께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손을 잡고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닐까. 대상 없는 질투가 가슴을 흔든다. 이런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밉지만, 생각과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뭘 하는지 모르겠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당신 옆에 아무도 없다면 내가 있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거다. 당신 곁이 비었다 한들 그 자리가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어떻게도 이뤄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미련에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과 단념을 반복한다. 어디까지가 이기심이고 어디부터가 배려인 걸까. 지금 난 내가 편해지기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것인가. 답을 모르는 건 아니다. 고민을 시작하기 전부터 답은 나와 있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 시간을 두고 천천히 멀어지면 된다. 그저 아는 사람. 이기심도 배려도 존재하지 않는 거리. 당신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편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알고 있다. 허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이 뻔하고 당연한 선택이, 너무 어렵다. 이기심이라도 좋다. 한심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도 좋다. 발을 붙잡고 매달려서라서 당신을 붙잡고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당신이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향한 망상은 점점 더 커진다. 시간은 계속해서 느려진다. 숨이 메여 가슴을 친다.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다.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 올라 가슴을 찌른다. 머리가 아프다. 오래전 사두었던 두통약을 꺼낸다. 두 알을 입에 넣고 물 한 잔을 마셔 넘긴다. 약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닌 걸 알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뭐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건 없고 하루는 길기만 하다. 어서 오늘이 끝났으면 좋겠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오늘 멈춘 그 자리에서 다시 통증이 시작되겠지.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비 맞으면 안 되는데. 하릴없이 걱정이 늘어간다.


사진 : Maga S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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