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지지 않는 손을 어쩌면 좋을까요.
나는 쓸모없어 버려진 종이입니다. 한쪽엔 당신의 흔적이 어지러이 남았지만 반대편엔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았습니다. 쓸모와 의미는 같지 않습니다. 달을 볼 때마다 이면지를 떠올립니다. 볼 수 있는 건 한쪽뿐입니다.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진실은 착함에 가려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닌 게 아닐 겁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어떻게도 자신을 달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뜻해지지 않는 손을 어쩌면 좋을까요. 오늘도 저는 다른 사람의 손마저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으며 차지 않다고 느끼는 건 당신뿐이었습니다. 겨울은 목을 휘감으며 옵니다. 당신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딘지 알려주듯, 겨울은 숨을 조이며 자신의 등장을 알립니다. 겨울보다 차가운 손으로 목을 감싸며 따뜻하다 느끼는 건 단절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차가운 손을 내밀고 나는 내 손을 감싸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작지만 깊이 패어 수시로 따가운 새끼손가락 끝을 보며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약속을 했던 게 언제였나 떠올려 봅니다. 불에 데어 주름이 지워진 엄지손가락을 보며 매끈한 상처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생각합니다. 신경 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상처들을 혼자 더듬는 건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오랜 습관 때문입니다. 고약한 버릇인 걸 알지만 이미 아늑한 집이 되어 나갈 수 없습니다. 내 집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 누구의 손도 차갑게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밖에 모르는 상처 때문에 오래 울더라도 손가락질하지 말아 주세요.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두 괜찮습니다. 집이기에 아무리 차가워도 괜찮습니다.
2017.11.15.2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