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살을 제대로 앓았다. 약을 먹고 자도 악몽을 꾸며 자주 깰 만큼 몸도 마음도 아팠다. 일주일을 꼬박 기운도 의욕도 없이 지내다 결국 결근을 하고 오후 두 시까지 죽은 사람처럼 자고 난 후, 부엌에 들어서니 이제 나으려나 보다 싶었다. 우습게도 어질러진 부엌이 눈에 거슬리는 걸 느끼며, 화낼 기운도 생기고 인제 정말 나았나 보다 싶었던 거다.
2. 찬 바람을 맞으며 오래 걷고 집에 들어왔을 때, 바깥의 공기를 가장 오래 머금고 있는 두 뺨의 찬 기운이 좋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은 이런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다행이고, 불행이다.
3.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그래서인지 아무 때고 학교 종과 무방비로 만나면 내 안에 애써 고정해 놓은 어떤 울타리가 넘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여러 가지 것들이 넘어온다. 그렇게 밀려오는 것 안에 정확히 뭐가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감정인 것도 같고 감각인 듯도 하고 정서 또는 기억인가도 싶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그렇게 바깥에서 들어온 뭔가가 내 안에 마련해주는 '빈 공간'이다. 들어와 자리를 채 우거나, '차지하는' 게 아닌 '자리 자체'를 만들어주는. 고요하고, 고유한 상태를 독려해주는 무엇. 그 기분이 익숙해 내가 이걸 언제 느껴봤더라 고민했더니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 문장들, 좋은 문장들을 읽었을 때.’
좋은 문장의 힘. 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