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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Nov 06. 2022

글쓰기와 재능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요즘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굳이 써야 할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매일, 매주 단위로 반복됨에도 익숙해지지 않은 채 매 번 허둥지둥 바쁘고, 힘에 부친다.


그러던 중, 최근 읽기 시작한 이슬아 작가의 글귀가 마음에 와 박힌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내가 ‘공부 관해 가져왔던 생각과 결이 비슷하다. 단연코 ‘후천적인 노력 기대 공부를 마칠  있었기에 노력과 꾸준함의 힘이 얼마나   알면서도, 글쓰기에 있어서는  다른 영역이라 여겼던  같다. 뭔가  예술 쪽에 가까운, 천부적인 재능이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치는 그런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현저히 다른 레벨로 뛰어난 글들을 많이 접하면서 굳이 나까지 쓰고 싶다고 나설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던 참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쓰기 시작한  아니면서도,  읽히기를 바라서 쓰는  아니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은 확실히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글쓰기가 업이 되어 생계와 직결되는 분들에게 이런 고민은 매우 철없고, 혹은 호사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글쓰기란, 나의 먹고사는 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우 소중하다. 어떤 의미에서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해낼 재간도 없다. 이런저런 말들로 이유를 정리해 보려고 하다가도 결국 뒤엉켜버리고 그게 정말 이유인지도 모를 지경이 된다. 확실히 아는 건, 살면서 꼭 먹어보고 싶은 것도, 꼭 가보고 싶은 곳도, 꼭 갖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내가 죽기 전에 시도조차 한 번 안 해 본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떳떳하지 못할 거 같아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재능이 전혀 없다고 밝혀진다면 너무 좌절스러울 거 같았다. 정말 꾸준함으로 재능을 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결국 계속 쓰다 보면 죽기 전엔 쓰는 사람이란 타이틀을 얻게 될까. 언젠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결국 쓰지 않곤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작가로 남는 거 같다고. '읽기'를 잃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읽지 않은 채 긴 시간을 보내면 숨통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심폐소생술을 받는 느낌으로 책을 집어 든다. '쓰기'는 잃어버릴 새도 없게 가진 적도 없었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나 간절할까. 그 이유를 알게 될 쯤이면 쓰지 않고 못 배기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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