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진짜 '어른'이란 무얼까? 고민한다. 첫 고민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친구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때 나에겐 실체 없는 걱정이 있었다. 나이는 20살. 몸만 자랐지, 머리는 자라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상태 그대로 세월에 휩쓸려 대학생이 된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고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정한 학과는 철학과. 감사하게도 다니게 된 대학교의 교수님들도 너무 좋았고, 학문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분명 새로운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아마 가장 쓸데 있는 글자들을 보고 생각들을 한 시기가 대학 입학 전부터 졸업 전까지가 아닐까 싶다. 졸업을 하고 나니 마주한 건 현실이었고, 불안에 급급한 현실 속에서(근데 또 이제 와서 돌아보니 뭐가 그리 조급했나 싶다. 그때가 가장 젊었고 새로운 도전들도 더 과감히 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내가 하는 생각들이라고는 고작 당장 눈앞에 마주한 취업이라는 문제들, 좁고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복닥거리며 느끼는 피로감과 감정들이 전부였다.
이러려고 철학과를 졸업한 게 아닌데... 씁쓸했다. 늘 한쪽 마음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얼마를 벌고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생각이 깊고 마음 그릇의 크기가 큰 그런 어른. 나보다 삶을 덜 산 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알고 본받고 싶은 점은 본받을 수 있는 어른. 웃어른께 예의 바르게 공경하며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나의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어른. 올곧은 가치관으로 나쁜 일에는 휩쓸리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킬 줄 아는 어른.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힘이 되어 주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줄 아는 어른. 막연하게 그리는 모습들은 많지만 마음처럼 하루아침에 그런 모습에 가까운 어른이 되는 건 항상 어렵다.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나의 질문에 해답을 조금이라도 찾고자,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다시 철학책을 집어 들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고 할지라도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들에 대한 필요한 답은 스스로 생각해 보는 힘을 기르고 싶어서였다. 걱정과 불안들로 똘똘 뭉쳐서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이 아닌 생각다운 생각을 하며 단단해지고 싶다.
예전에는 우연히 보게 되는 책 구절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이해가 되는 구절이 있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자."** 전에는 늘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인식하려 했고,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으면 좋은 거 아닌 건가?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거. 그 당연하고도 쉽지 않은 일. 아무리 내가 지금 못난 모습일지라도, 하고 있는 일이 조금 서툴더라도 끝까지 믿고 응원해 줄 사람은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살다 보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나를 망치기도 한다. 내 할 일을 제대로 못 하게 만들기도 하고 본질이 무엇인지 잊게도 만든다. 내가 날 사랑하면 타인의 시선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다 보면 비로소 자연스러워지는 것들이 있다. 나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억지로 애쓰지 않으니 부자연스럽지 않은 진짜 나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다운 어른이 되는 거 아닐까? 사실 이런 모든 말들이 흔하기는 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요.'가 된다. 참 어렵지만, 깨닫기 위해, 나를 꽁꽁 싸매고 있는 벽과 알들을 깨부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깨고 나와야 진정한 어른이 될 테이 말이다.
걷다 보니 가을을 넘어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의 공기가 차다. 여름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가, 끝나기는 하는 건지 싶을 정도로 더웠는데, 여름이 가고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매년 돌고 돌아오는 사계절이 참 익숙하면서도 새삼 신기하다.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어른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생각 어린 몸만 자란, 눈가에 주름만 한 줄 더 늘어난 물리적 나이가 찬 어른이다. 나이가 이쯤 들면 조금은 내가 생각했던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그게 참 쉽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고 돌아 제 온도를 품는 사계절의 모습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연 속 사계절 같은 사람이고 싶다. 그런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