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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xiweol Nov 08. 2024

1994년 10월 8일 새벽 2시.

   

   나는 내가 태어난 해와 날짜 그리고 시간을 사랑한다. 어쩐지 뱉어보면 입에 착 감기는 듯한 천구백구십사 년. 태어나 보니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시월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10월생이다. 그리고 1004는 아니지만 1008로 이어지는 숫자 조합이 그냥, 이유 없이 마음에 든다. 새벽 감성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시간은 새벽 2시라고 생각하는데 그해 그 시간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를 마주하지 않고 이름으로 소개할 때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이름까지. 나를 감싸고 있는 내 외피를 좋아한다. 다른 누군가가 내게 앞서 설명한 단어들을 바꾸자고 하면 싫다고 답할 만큼 사랑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완전히 정반대인 속을 지녔다.


   “너는 널 얼마나 사랑해?” 요즘 스스로 묻는 질문이다.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할 수 있는 행동도 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무슨 일을 잘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일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이룬 것이 없고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존경해야만 한다. 그런 태도를 가진 자만이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언제,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분명 못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매사 자신감이 없고, 조심스럽다. 이제는 이런 내가 답답할 때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간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코앞에 닥쳤을 때는 자그마한 일도 크게 느껴져 며칠씩 앓는다.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들과 타인들의 생각까지 더해져 크지도 않은 뇌를 부풀린다. 일이 잘못되면 내 탓으로 돌리기 바쁘고, 자책하기 급급하다. 관계 속에서도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보다는 상대방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살피기 바쁘다. 대체 왜 이렇게 나를 갉아먹으며 괴로워하는 걸까?


   글을 쓰면 나아질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시끄럽게 떠드는 잡생각들을 털어내 보려 펜을 잡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덕분에 어떤 사건들은 쉬이 잊혔고 또 어떤 일들은 정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하다. 많이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로 타인들과 말을 섞고 나를 집어삼킨다. 되돌아보니 중심은 타인이었고, 그곳에 나는 없었다. 의견도, 감정도.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해와 시간과 계절을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내가 숨 쉬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오로지 나만 1순위로 만들고 싶다.


   하는 행동에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뱉는 말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다른 이의 의견도 받아들일 준비는 충분히 가진 채로 분명하게 지금, 내 의견을 말한다. 다가오는 이를 겁내지 않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 나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나답게 웃는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하고 주눅 들지 않으며 정정한다. 타인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오롯이 내 감정과 행위들에만 집중하며 보살핀다. 너무 자기 비하적인 생각과 어린 언어가 아닌 정제되고 어른스러운 언어들로 나를 달랜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과 내가 사랑하고 싶은 이들에게만 집중한다.


   매를 많이 맞으면 맷집이 는다고 한다. 가끔은 의문이 들었다. 굳이 매를 많이 맞아서 맷집을 늘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 더 아껴주고 사랑하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었다. 감히 상상 속에서조차 없는 다양한 생물들과 살아가는 곳임을 이제는 안다. 그럴 수도 있는 세상에서, 답이 없는 대지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인지했으니 깎아가는 고통을 느끼며 길고 긴 수련 시간을 거쳐 천천히 변하면 된다. 아직은 미완성이 당연한 인간이니 말이다. 조금 미미한 나를 이해해 주는 것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순서도 뒤바뀌고 횡설수설 문장들을 오늘도 배설한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오늘을 기대하며. 더디면 더딘 대로, 멍청했으면 멍청했던 대로 사랑한다. 날 사랑한다. 

아마도 어스름한 천구백구십사 년 새벽을 환히 비추고 있었을 달처럼.

산책을 재촉하는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을 시월 팔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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