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아침이 왔다. 그날의 아침이.
승패가 없이 서로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하며 함께 즐기는 제4회 ISTK.
부상으로는 ISTK로고가 새겨진 헤드기어를 준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선착순으로 나누어 준다고 했고, 기준은 몸무게가 본인이 나가는 시합 체급에 안정권이어야 했다. 다행히 조금 넉넉하게 체급을 신청하기도 했고, 약 2주간 나름의 맹훈련과 부담감으로 살이 오히려 더 빠져서 미통과를 걱정할 일은 없었다. 체육관 사람들과 8시 40분까지 만나기로 했다. 받을 수 있는 헤드기어를 늦어서 못 받으면 꽤나 아쉬우니깐. 며칠 전 대진표를 받아서 나의 경기 순서는 알고 있었다.
오마이갓- 이럴 수가!! 맨 마지막이었다.
그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할 동안 내가 마음 편히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까?....
나의 시합 종목은 킥복싱인데, 복싱으로 잘못 나와 막판에 순서가 조금 앞당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뒷순서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아침을 눈을 떴을 때 오히려 떨리지 않았다.
주말에 늘 참여하던 스파링 훈련에 가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점심은 계체 끝나고 본 시합 전에 먹을 거라 아침은 패스했다. 잘 씻고, 선크림도 꼼꼼히 바르고. 이날을 위해 준비한 생애 첫 무에타이 트렁크도 가방 안에 넣었다. "이런 바지를 내가 입다니." 덕분에 이런 모습이 생소한 가족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다.
스스로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가방 안에 트렁크와 글러브와(시합용 글러브는 제공해 주지만, 기다리는 동안 몸풀기용으로 필수!), 정강이 보호대와 마우스 피스도 절대 잊지 않았다.
부지런히 가을을 통과 중인 계절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했다. 팀복 위에 든든하게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나의 모든 전투 장비를 갖춘 채. 익숙한 거리를 지나며 체육관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즈음, 거리에 다른 체육관에서 온 선수들과 코치들이 보였다. 모든 게 처음인 나는 이 상황조차 새로워서 웃음이 나왔다.
몸을 푸는 사람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저런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체육관 속 어딘가에 있자니, 오랜만에 느껴보니 도파민이 사악 올라왔다.
마치, 초등학교 때 운동회 시작 전의 왁자지껄 함이랄까? 지난 옛 기억들도 잠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계체는 무사히 통과했다. 내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재질도 좋은 헤드기어를 받았다. 계체를 끝내고 시합 전의 순서가 시작되었다. 이름이 호명되면 각 상대와 마주 보며 포즈를 취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였지만, 그 친구는 이미 시합을 몇 번 나가 본 선수라고 했다. 미소를 지어 보이는 소녀는 세상 온화해 보였다. 처음 본 상대와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연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정도면 지금 내가 도파민에 절여져 미친 거구나. 생각했다.
단체 사진도 찍고 그렇게 본 시합 전 순서를 마무리했다. 어느덧 점심시간. 각자 점심을 먹고 12시까지 다시 체육관으로 모이기로 했다. 우리는 근처 감자탕 집으로 향했다. 같은 체육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더없이 든든했다. 어제까지는 분명 시합 전에 아무것도 못 먹거나 가볍게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했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고 순서도 뒤다 보니 아마 실감이 안 났던 것 같다. 뼈해장국과 흰쌀밥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카페로 이동해서 긴장을 풀며, 그동안 해왔던 연습들을 복기하며 서로에게 응원의 말들을 건넸다. 시간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체육관에 도착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시합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하루가 엄청 짧겠구나'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