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K_D-DAY.(2)

by Oroxiweol

우리 체육관에는 멋진 회원분들이 많다.

그중 60이 넘은 나이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에 참여하신 어머니 두 분이 계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두 분의 이벤트성 스파링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초등부 경기. 크지 않은 내 키에 허리에도 오지 않은 작은 생명체들이 제 몸보다 큰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끼고 자세를 잡는다. 나름의 룰을 지켜가며 상대의 배와 헤드기어를 타격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귀여운 경기라니-!'


조금 큰 초등부의 경기는 성인부 못지않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를 뚫고 나오는 킥소리가 살벌했다. 서로 응원하고 웃으며 사각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니 어느새 1부가 끝이 났다.

잠시 쉬는 시간. 2부에 시합을 앞둔 체육관 사람들이 몸을 풀 수 있도록 미트를 잡아주었다. 헤드기어와 몸통 보호대도 단단하게 조여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슬슬 실감이 났다. 같이 연습했던 언니, 형님들이 먼저 링 위로 올라갔다. 비록 승패 없는 아마추어 경험 경기이지만 모두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떨린다고, 긴장이 너무 된다고 하더니... 엄살이었다.!! 연습했던 대로 아래에서 목청껏 외치시는 관장님의 코칭. 침착하게 공격을 해나갔다. 상대의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등 보이지 않는 모습이 뭉클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충분히 2부를 즐기고 나니 또 바로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3부 첫 경기부터는 거의 즐기지 못했다. 한 사람, 한 순서가 끝나 갈수록 눈앞의 링이 점점 부푸는 기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글러브를 착용하고 몸을 움직였다. 옆에서 나의 상대 선수 역시 가볍게 미트를 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나와 경기를 치르게 될 상대는 시합 경험이 있는 선수였으며, 미성년자였다. 선수라는 사실만으로도 떨렸는데 더 부담이 됐던 건 미성년자라는 거였다.


'당연히 시합이지만 내가 미성년자를 칠 수 있을까? 쳐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그 친구는 이미 선수잖아.'


스트레칭을 하며 한쪽 눈과 뇌는 그 친구를 쫓았다. 심지어 그 친구는 2부 때 나와 같은 체육관에서 잘하는 언니와 이미 한 번 경기를 치른 뒤였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먼저 경기를 치른 언니에게 물어봤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하면 좋을지, 나름 생의 첫 시합인데 전력을 다해 싸워봐도 괜찮을까?.. 이런저런 물음에 언니가 속 시원하게 한 마디를 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 그래도 돼. 다 해보고 내려와."


체육관 언니의 말 한마디의 계속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훈련하면서 관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_상대가 아플까 봐, 공격을 못 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하는 건데 먼저 했던 관원들처럼 나도 멋있게 최선을 다해보자-!'


마지막으로 몸통 보호대와 신가드, 헤드기어, 글러브와 마우스 피스까지 야무지게 착용하고 진지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이름이 호명되었다.

원래 다니던 체육관에서 시합이 이루어진 건 참 다행인 일이었다. 늘 넘어가던 링 위에 줄들을 익숙하게 넘어갔다. 오, 마치 무대에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심판의 'Fight' 소리에 맞춰 상대에게 주먹 인사를 건넸다. 시작이다.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은 빠르게 흐를 것이다. 나는 눈앞에 상대만 봤다.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이기에 상대의 공격 흐름 따위 읽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상대는 능숙한 선수였고, 내가 경험이 없는 초보임을 알았기에 실력을 조절해 가며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그냥 냅다 돌진이었다. 나름 자신 있는 체력과 힘으로 공격을 이어나갔고, 상대는 조금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선수였다. 킥 파워가 장난이 아니었다. 왼쪽 옆구리를 연속으로 맞고 나자 순간적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왼쪽 뼈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행히 심판은 빠르게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고, 관장님의 지도에 맞춰 충분히 숨을 쉬었다. 그리고 2라운드 역시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웃으며 내려올 수 있었다. 열심히 나를 상대해 준 선수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니 맨 처음 스파링을 했었던 양가감정이 들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첫 경기를 마쳤다는 생각과 해냈다는 뿌듯함, 동시에 오늘 처음 만난 이를, 그것도 미성년자를 쳤다는 생각. 이런 생각은 어리석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처음이기에 스스로에게 오늘까지만 허용해 주기로 했다.


Screenshot_20251101_205535_Instagram.jpg
1762000266855.jpg


혼자가 올라가 또 다른 혼자와 겨루는 스포츠이지만 절대 혼자가 아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으쌰으쌰 하며 훈련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각자의 경기 아래 누구보다 열렬하게 응원해 주던 서로가 있어서 가능했던 첫 시합.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감정을 기록하고. 단톡방은 저녁 내내 훈훈한 말들이 오갔다. 그날 밤, 몸은 조금 뻐근했지만 어딘가 꽉 찬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단순히 킥복싱이라는 운동을 하자고 체육관을 오간 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체력을 기르고 싶어 체육관을 찾았고, 운이 좋게도 킥복싱이 나에게 너무 잘 맞는 운동이었고, 재밌게 운동을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 졌고, 더 잘하고 싶어 지니 나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모여 첫 열매를 맺었다. 잘 못해도 자신이 없어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그냥 해보는 것.

2025년,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어떤 것보다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값졌다.

이 시합을 끝으로 또 다른 나를 만날 날들이 기대가 된다.

이제 시작이라는 거.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