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오프라인 10km 마라톤, D-DAY-!!
정말 다행히 당일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막히던 코도 조금 뚫려서 온전히 코로 숨을 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대회가 아침 일찍이 아닌, 점심 먹고 난 뒤인 오후 시간대였다.
2024년 10월 26일. 완연한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었던 토요일. 살짝 더운 감도 있었지만 비교적 따뜻했던 10월의 마라톤이라니. 환상과 낭만이 가득했다. 운이 좋게 동네에서 열린 거라 아점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대회장소까지 슬슬 걸어갔다. 두 근 반, 세근 반. 콩닥콩닥거리는 소리는 애써 무시하며 가족과 수다를 떨며 도착. 첫 참가인만큼 주변 분위기가 너무 생경했다. 이미 여러 번 참가해서 익숙한 듯, 이런 대회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푸는 고수 러너들 사이에서 괜히 나 혼자 쭈뼛쭈뼛. 체육관 사람들 몇 명과 같이 나가기로 했는데 그들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본격 시합을 앞두고 진행된 행사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단체로 하는 체조에 참여도 해보고.
날씨 탓인지,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 덕인지 무릎을 돌리며 나도 모르게 피실 피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A부터 C조까지 조를 나누어 출발했는데, 나와 체육관 동생이 같이 C조였다. C조 무리에 섞여 같이 사진을 찍으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출발할 시간이다. 혼자 달릴 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노래 없이 뛰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는 판단. 출발 전에는 분명 한 덩어리였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춰 흩어졌다. 나와 체육관 동생도 서로 뽜이팅을 외치며 빠이-!
달리면서 느꼈다. '아, 오버 페이스다.' 흥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거다. 예상보다 숨을 가빠오고, 멈추기에는 돌이킬 수 없었다. 설상가상 뛰다가 배번표 옷핀 한쪽이 떨어졌다. 달리면서 옷 핀을 다시 꽂으랴, 빠르게 달리랴 아주 혼자 난리 부르스를 쳤다. 그리고 분명 시작 전에 화장실도 다녀왔는데... 방광에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미치고 팔짝 뛰고 대환장. 다, 인간의 욕심이지만 당연히 완주하고 싶었고, 그 완주를 '잘'해내고 싶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생각했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하나하나 해결하자. 옷핀은 다시 잘 꽂았으니 넘어가고, 이제 가쁜 숨을 해결할 차례다. 처음 경험해 보는 호흡이었다. 양념 조금 쳐서 '뛰다가 숨이 막힐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멈추면 나는 남은 지점 뛰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의식적으로 줄였다.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고를 반복했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니 살만했다. 방광 신호는..... "그냥, 버텨-!!!"
그렇게 장애물들을 해결하고 나니 어느새 8km. 다 왔다. 이제 2km만 달려 나가면 된다. 등에서 땀이 흐르고, 아직 방광은 잘 버텨주고 있었다. 달리기 코스 옆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던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거짓말처럼 나의 이름이 들려왔다. 언니였다. 달리는 나의 모습을 찍어주기 위해 코스 중간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웃기고 뭉클하고 쉬 마렵고.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지만 잘 참고 마지막까지 무사 완주할 수 있었다.
나의 이름과 기록이 각인된 메달을 손에 넣으며 비로소 하루가 끝이 났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빨리 잘 달리고 싶었던 욕심에 달리는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그 사실은 골인 지점에 들어왔을 때 찍힌 나의 표정이 말해주었다. 한껏 일그러져 있던 그 표정이 못내 아쉬웠다.
'하긴, 시합이니깐 잘 나온 기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으니깐 그게 맞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 10km 마라톤 대회에서는 기록이니 뭐니 신경 쓰지 말고 그 순간을 즐기고자 다시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
복싱을 시작하고 나니, 체력이 좋아졌고 좋아진 체력은 또 다른 운동을 더 잘 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10km 마라톤도 나갔다 왔으니, 복싱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나의 모습들, 순간들. 다음은 어떤 운동일지, 무얼 해내며 또 다른 페이지를 남길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_그날의 기록.
1시간 안에 들어오라던 농담 반, 진담 반 러닝 스승, 언니의 말에 응했던 기록.
처음 경험해 본 마라톤 현장은 신세계였다. 너무나 멋진 각양각색의 사람들. 알아서들 열심히 몸 풀고, 다양한 러닝화와 복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작 전에는 살짝 쫄았지만, 달리기 시작하니 쫄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현장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유아차 끌고 달리는 아버지들도 보이고, 꽤 많았던 어린 꼬마들도 열심히 달리더라. 정말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모인 곳. 주변에서 모두가 와다다 달리니 나도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하늘은 높고, 살짝 더웠다가 선선해진 완연한 가을 날씨를 품었던 날. 기존의 감정과 새로운 감정들이 뒤섞여 온몸에 털이 삐쭉 서기도 했던 첫 마라톤. 참... 뜻깊었다. 건강하게 운동하고 열심히 살자!라는 다짐이 절로 들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