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리기 역사를 논하자면 거슬러, 거슬러 초등학생 때로 올라간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도 운동을 참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교실 안에서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것보다 흙이 잔뜩 깔려 있는 운동장을 뛰어다닐 수 있는 체육 수업을 가장 좋아했고 매년 체육대회 때 계주 선수는 당연했다, 피구를 할 때도 항상 공을 들고 상대 편의 누구를 아웃시켜 줄까 탐색하던 어린이. 그게 나였다. 대학을 가기 위해 진로가 중요하던 고등학생 시절, 잠시 체육학과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체육, 운동은 내게 그리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은 종목이자 과목이었다. 20대 초반, 준비된 교육과정을 모두 졸업한 뒤, 내 인생의 시간표에는 운동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정말 다이어트 목적으로 집에서 사이클을 타거나(그것도 아주 지루하게) 동네 산책로를 1시간 이상씩 걷는 정도? 그게 다였다.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거다.
재미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홈트레이닝, 걷기, 실내 사이클을 전전했다. 그런 운동들이 버겁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4살 터울의 언니가 달리기 시작했다. 언니가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대체 어떤 바람이 불어와 언니를 달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니가 동네 하천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또 달리는군!' 정도였다. 케이던스니 페이스니 이런 달리기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으니 언니가 오늘은 몇 km를 달렸다며 좋아해도 시큰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슬슬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1km만 달려봐라, 10분만 달려봐라.
세상에- 소식젓 반 대표 계주선수였던 내가 성인이 되고 뛰려니 1km도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에라 난 안 뛴다. 언니나 즐겁게 마저 뛰어라. 다시 덮어두었던 러닝.
나에게도 어떤 바람이 불어왔는지, 시작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냥 노래를 들으며 뛰었다.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SNS 보면 '10일 동안 러닝하니 살이 무섭게 빠져요!!!' 라며 난리던데 그렇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홀로 하천을 달리려니깐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걷는 사람들을 지나쳐 갈 때의 뻘쭘함! 왠지 모두가 뛰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자의식 과잉 현상까지 벌어졌다.
러닝 횟수가 늘어갈 때 즈음 다행히 뻘쭘함과 민망함은 사라졌다. 아마도 코로나 시기였던 것 같은데, 사회 활동 제한의 답답함을 못 견디고 하천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 대열에 합류해 걷는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달리는 나로 성장 중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니가 열 번 달리면 나는 두 번 달리는 사람이었기에, 역시나 살은 빠지지 않았다. km수도 대단히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페이스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기록으로 보이던 시기였다. 5km를 달리던 날 좋다고, 신기록이라며 인스타에 피드도 박제하던 그때의 나. 언니의 km 수 자랑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하던 그때, 3km~6km를 왔다 갔다, 깔짝깔짝 러닝을 하던 와중에 킥복싱을 다니게 된 것이다.
가보니 그곳에 러닝크루가 있었다. 단톡방만 만들고 꼭 같이 달리지는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자신의 달리기 인증을 하며 달리기 하는 다른 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시간이 맞으면 체육관 회원들과 천천히 수다 떨며 달리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단톡방에 인증하는 것도 민망했다. 정말 별게 다 민망한 내향인이다.
'오늘은 몇 km를 뛰었어요~'라며 사진과 함께 인증하는 게 꼭 자랑 같기도 하고, 너무 조금 뛴 km 수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평소처럼 홀로 뛰고, 다른 사람들의 인증을 구경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증을 보기 시작하니 나도 더 잘 달리고 싶어 졌던 것 같다. 6km를 달린 이가 있으면 나는 7km를 달려보고 조금씩 조금씩. 처음에는 약간의 경쟁심으로 달릴 수 있는 km 수를 늘려나갔다. 페이스는 느렸지만 km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 견디며 숨을 헐떡이는 지점을 통과하면 전날보다 조금 더 달릴 수 있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이 아닌 내 기록을 보기 시작했고, 언니가 그렇게 말하던 달렸을 때의 기분 째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러닝의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 체육관에서 10km 러닝 대회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했다. 아직 10km는 달려보지 못했지만 '아, 한번 같이 달려볼까? 재밌을 것도 같은데?!!' 하는 생각에 덜컥 신청을 해버렸다.
대회 날을 앞두고 번호표와 물품이 도착했다. 더 이상 무를 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 감기까지 걸려버렸다. 연습 삼아 달리 때 콧물이 흘렀고, 코가 숨을 쉬기 힘들어 더 힘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번외] 달리기 2편은 다음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