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30초, 6라운드.

by Oroxiw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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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7.


설이 지나자 시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듯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머리를 질끈 묶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줄넘기 3분, 2라운드를 마치고 스트레칭도 꼼꼼하게 해 주고, 관장님의 지도 아래 체력운동까지 마쳤다. 잠시 물을 마시며 숨 고르기 시간이 일명 '워터타임'을 갖고 양손에 글러브를 끼웠다.

이제 짝을 지어 샌드백 앞으로 소환되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예상 밖 링 위로 소환됐다.

오늘 나를 조질 상대는 저번과 다른 남 코치님. 코치님의 주먹을 볼 새도 없을 만큼 빠르고 한번 맞으면 골이 울릴 정도의 파워를 가진 자. 마주 섰을 때 이미 너무 무서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포'였다.


링 위에는 나, 코치님, 또 다른 남자 회원님. 이렇게 셋.

아아아주 감사하게도 관장님은 시합에 나가는 나에게 맞춰 스파링을 하라고 지시하셨다.

즉, 나는 쉬지 않고 계속 라운드를 도는 것이다. 1분 30초 6라운드. 늘 체력은 자신하는 나였기에 문제 될 것 없는 라운드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과 파워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귀도 잠깐 안 들렸던 것 같고, 입에서 피맛도 나는 것 같았다.

킥 말고 바디샷으로 내장 기관이 흔들린 느낌은 처음이었다. '와, 이거 맞아?'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스파링 하다가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공격 따위는 언감생심.

방어다운 방어도 못한 채 피해 다니기 바빴다. 피한 것도 제대로 피했는지가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1분 30초 벨이 울리기 전에는 움직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등을 보이지도 않았다.

정말 그야말로 주먹이 날아오면 '처맞았다.' 인스타그램 릴스 속 잘하는 복서들처럼 슥-빡은 무슨.

일단 눈앞에 틈이 보인다 싶으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배뿐이었다. 그렇게 공격을 하면서도 '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20번 처맞으면 1번 가격하고, 지치고 무서운 시간이 끝나고 피드백시간.

돌아온 코치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잘하실 것 같은데요? 회원님이 우승하면 저한테 소고기 사주세요-! 못하면 제가 사드릴게요."


그 옆에 있던 다른 회원님도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는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스파링 하는 동안 이 짧은 시간 동안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경기야, 가봐야 알겠지만. 사람인지라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은 마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런 마음에 짓눌려서 시합조차 즐기지 못하면 어쩌지?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 모순적인 마음.


1분 30초를 6라운드 해낸 이 체력으로, 아니지. 남은 기간 동안 체력도 능력도 더 끌어올려서 제대로 하고 내려오고 싶다. 머리 나빠지면 어쩌나, 코 망가지면 어쩌나, 내 내장기관 위치가 재배열되면 어쩌나. 온갖 걱정이 들었던 무시무시한 시간이었지만, 덜 맞고 덜 아프려면 열심히 가드하고 남는 이 체력으로 냅다 도망 다니자. 그리고 물러서지 말자. 6라운드를 했으니 2라운드 못할 것도 없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