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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미티스 Aug 26. 2023

코피처럼 찬란히(2)

루이 드 퓌네스와 피에르 리샤르 (프랑스 희극 배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은 필자가 본래의 의미에 가장 가깝게 임의로 번역했으나, 국내에 소개된 영화는 원제목과 전혀 다르더라도 소개된 제목을 먼저 표기했습니다.)


도날드 덕과 루이 드 퓌네스     


루이 드 퓌네스를 처음 본 것은 대학 시절 프랑스문화원에서였다. 당시에는 아무런 영화사적 지식도 없었고 그저 상영되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그러니까 백지 같은 어린아이의 상태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버릇은 지금까지도 여전해서 콘서트나 전시회, 영화, 연극, 무용 공연을 볼 때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맞닥뜨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공연 시작 전에 절대로 팸플릿을 읽지 않는다. 그래야 아무런 선입견 없이 나만의 가치에 따른 은밀한 만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약간 원시적인 감상법이긴 하지만 은밀한 첫 만남에서 뭔가 오가는 것이 있어야 그다음에 그 만남의 상대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오가는 것이 없으면 남이야 뭐라든 아무리 유명하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작품일지라도 내겐 소용이 없다. 루이 드 퓌네스와의 만남도 그런 식이었다. 당시의 상영작은 <쥐도 새도 모르게 Ni vu ni connu (1957) >, <맛있게 드세요 L'aile ou la cuisse (날개 드릴까요, 다리 드릴까요)(1976) > 등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사전에서는 그다지 지명도가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나는 중간중간 배를 잡고 웃었고 그 와중에 뭔가가 오간 것이 있었던가 보다.     


드 퓌네스는 세빌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는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 밤무대의 피아니스트 등 온갖 직업을 거치면서도 연극과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던 차에, 1945년 쟝 스텔리 감독의 <바르비종의 유혹 La tentaion de Barbizon>이라는 작품을 통해 데뷔하면서 출연작 138편에 이르는 대장정에 나선다. 시종일관 프로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던 그는 다음처럼 회상했다.          


‘나는 뒤늦게서야 빛을 보게 되었던, 배우로서의 삶에 후회는 없다. 초창기의 어려웠던 시절이 나에게는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을 깨닫는 중요한 기회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무명시절에 맡겨진 작은 배역 속에서 제스처와 연기의 세밀한 부분을 연마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경험을 쌓으며 코미디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이 여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60년대에 감독 제라르 우리(Gérard Oury)를 만남으로써 그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함께 프랑스 코미디 최고 스타의 영광을 안게 된다. 1956년에서 1989년 사이 프랑스영화 흥행 베스트의 1위에서 3위가 드 퓌네스의 출연작이며 그중 두 작품이 우리의 연출로 이루어졌다. <파리 대탈출 La grande vadrouille (대탈출) (1966)> (1700만), <바보 Le corniaud (1964)> (1100만), <생 트로페의 경찰관 Le gendarme de Saint-Tropez (1964) > (700만) 등 폭발적인 관객 동원은 프랑스 영화사의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대탈출 작전 La grande vadrouille>에서 교향악단의 지휘자 스타니슬라스 르포르 역을, <바보 Le corniaud>에서는 돈에 눈이 어두워 보석밀수를 기도하는 기업체의 사장 사로양, <생 트로페의 경찰관 Le gendarme de Saint-Tropez>에서 경찰서장 역을 맡은 드 퓌네스에게는 일관된 성격이 보이는데, 그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탈출구를 모색하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예민한 완벽주의자로, 흡사 디즈니 만화의 도날드 덕을 연상케 한다.      


파리대탈출에 쓰였던 소품과 슬레이트.  Lénaïc Mercier / Musée Louis de Funès, CC BY-SA 2.0




미간에는 언제나 V자의 주름이 곤두서 있고 그가 흥분할 때 짓는 표정, 몸짓, 입을 앙당 물고 아르릉대며 내는 괴상한 소리까지, 그만의 고유하고 섬세한 연기는 드 퓌네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바보 Le corniaud>의 명장면 중, 캠프촌의 샤워실 거울 앞에서 근육질의 남자를 부러워하는 사로양, 드 퓌네스는 볼품없는 자신의 살덩이를 툭툭치고 잡아당기며 근육질의 남자를 조금 흉내 내어 보다가 체념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표정과 몸짓은 한몫을 톡톡히 한다. 드 퓌네스의 존재는 약간 바보스러운 성격이 코미디언의 필수요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보 Le corniaud>에서도 그는 오히려 바보(부르빌)를 이용해 먹으려는 악한 사장으로 열연했다. 그래도 <바보 Le corniaud>에 바보는 빠지지 않는다.          






검은 구두를 신은 금발의 사나이 피에르 리샤르     


살짝 내려앉은 눈꼬리, 가운데는 벗겨지고 양쪽으로 동그랗게 뭉친 금발의 곱슬머리, 의기소침하며 수줍은 얼굴. 희극 배우는 이미 타고난 생김새가 그의 운명이 되는 것일까.     

<검은 구두를 신은 금발의 사나이 (1972)>는 이브 로베르가 감독한 그의 출연작으로, 수줍고 열뜬 바이올리니스트가 졸지에 스파이로 지목되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작품인데, 그는 이후 영화사에서 ‘그랑 블롱(금발의 사나이)’으로 불리게 된다.     


연기 생활 중간에 때로 직접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던 피에르 리샤르의 연기자로서의 성공은, 프랑시스 베베르 감독과 함께 작업한 <염소 La chèvre (1981)>, <대부 Les compères (1983)>,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Les fugitifs(도망자) (1986)> 세 작품에서 확인된다. 한국 관객에게도 낯익은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듀오로 출연한 이 작품들에서 강한 남성성의 상징인 ‘터프 가이’ 드파르디유와 섬세하고 나약한 피에르 리샤르의 충돌과 조화가 희극적 효과의 축을 이루고 있다.     


언제나 불행한 일만 당하는 사장의 외동딸이 멕시코에서 실종되자, 그 회사의 직원이자, 그 또한 언제나 불행의 희생양이 되는 프랑수아 페랭이 사설탐정 캉파나와 함께 멕시코로 파견되는 <염소 La chèvre>, 아들이 가출하자 엄마의 옛 애인이었던 프랑수아 피뇽과 장 루카 모두에게 그들이 아들의 진짜 아버지라며 거짓말을 해서 아들을 찾아 나서게 하는 <대부 Les compères>, 막 출옥한 장 루카가 어설픈 강도 프랑수아 피뇽에게 인질로 잡히나, 둘이 함께 공범으로 몰려 이탈리아로 도망가는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Les fugitifs(도망자)>(국내에서 우리말로 감상이 가능한 드문 작품 중 하나)는 모두 독창적인 스토리와 함께 코미디의 경계를 넘어서는 따스한 인간적 감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타티의 말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를 쓰는 코미디만큼 어색한 건 없고, 그러다 보니 꼼꼼하게 짜인 중간중간의 스케치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염소 La chèvre>에서, 프랑수아 페랭이 얼마나 재수가 없는 인간인가를 사장에게 보여주기 위해, 회의실 대형 원탁에 놓여 있던 수십 개의 의자 중 하나의 다리를 잘라놓고, 페랭이 들어오자 좌석을 권한다. 그러면 페랭은 그 많은 의자 중 다리가 부러진 의자를 골라 앉아 나자빠진다. 말벌은 꼭 프랑수아 페랭을 쏘고, 그에게는 벌독 알레르기가 있다. 자동문은 그가 지날 때만 고장 나고, 거대한 사막 한복판에서 캉파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 있는데 그가 서있는 자리만 모래 수렁이라 몸이 점점 빨려 들어가 캉파나가 구해 준다. 그래도 결국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벌에 쏘여 생명이 위급해지자 입원한 병원에서 사장의 딸을 만난다. 관객은, 그 사장의 딸도,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페랭이 겪은 것과 유사한 불행 끝에 거기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이심전심과 동병상련이 그 둘 사이를 이어준다. 계속되는 불행이 어느 정도 반복되면 식상하기 시작하지만, 그것이 관객의 상상을 한 번만 앞지르면, 그것은 성공적인 배팅이다. 불행의 확률, 재수 없음의 메커니즘, 머피의 법칙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될 때, 관객은 그들 자신의 불행과 재수 없음에 대해 약간 안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 Les compères>에서도 프랑수아 피뇽은 이미 습관성 자살 기도 환자에다가 괴짜 시인인데, 실직과 이혼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권총 자살을 기도하다가 아들을 찾아내라는 옛 애인의 전화를 받는다. 그에게 아들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은 절망의 한가운데서 돌파구가 되어 주지만 아들은 진짜 아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끝내 그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가짜 아들의 따뜻한 인간미가 선의의 거짓을 감싸준 덕분이다.     


한국영화사에 있어 장르로서의 코미디가 분명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언제부턴가 액션물과 섞이거나 로맨스와 섞여서, 코미디는 어쩐지 영화에 얹어지는 고명이나 소스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김희갑, 구봉서, 트위스트 김 같은 원로 배우들의 작품들이 있었고, 70년대에는 ‘고교 얄개’ 식의 하이틴물이 있었지만 90년대에 와서야 상업주의에 힘입은 코미디 영화들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와 소위 ‘혁명 이후 세대’ 감독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웃는 일에 인색했던 아버지 세대의 경직성에 대한 반작용이 시작된 것일까. 그러나 아무래도 코미디는 운명적으로 상업적인 계산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휘발성 웃음을 선사하는 데 그치고 마는, 개봉 때만 반짝 흥행기록을 세우다가 그다음 해에는 제목조차 가물거리는 코미디보다는, 비디오로 소장하고 있다가 두고두고 또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을 웃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네 삶의 뒷면을 살짝 벗겨내고 그 속살을 간지럽히는 웃음이 있는가 하면, 속에서 나를 조이고 있던 끈 같은 것이 툭 끊어지면서 영혼의 바닥을 치는 웃음이, 코피처럼 찬란히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웃음이 있다. 이런 웃음들은 때로 삶의 정수를 꿰뚫는다. 자크 타티의 윌로, 클로드 지디의 샤를로, 피에르 에텍스의 요요처럼 한국 코미디의 전당에 걸릴 초상화를, 나는 코미디 영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코미디를 말로 풀어 설명한다는 것은 사이다의 김빼기와도 같은 짓이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과거에 산발적으로 보았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보았던 두어 달 동안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 한평생을 남을 웃기는데 바쳤던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그들은 죽어서 천국의 좁은 문을 무사히 통과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간사에 대한 한바탕 웃음, 그것이 깨달은 자들의 몫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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