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위원회에 출석하다(2024.7.16)

아직 19세가 아닌 아이들

by 몽당

여름 방학이 코앞이어서 아이들은 부쩍 들떠 있었다. 기대감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매일 아껴가며 녹여먹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방학을 4일 앞둔 월요일,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정현(가명)이 담임입니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님, 혹시 오늘 정현이가 하교 후에 아무 얘기 없었나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지 아직 안 들어왔어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이거 참,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네요. 흠흠."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인지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이셨다.

"정현이가 친구에게 음란물 사이트 링크를 달라고 요구한 것 같아요."

"...... 네?!"

너무 황당해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문자 그대로 내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게... 한 친구가 음란물 사이트를 알고 있었는데, 그걸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과 같이 봤대요.

그런데 다른 친구가 말하길, 정현이가 먼저 그 친구에게 보여달라고 했다네요."

"..."

믿어지지가 않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 네 명이 모여서 그 사이트를 같이 볼 때, 정현이는 같이 보지는 않은 것 같아요."

"... 그건 다행이네요."

"아까 정현이랑 잠시 얘기를 나눠보았는데요. 정말 볼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고, 장난으로 건넨 말이었다고 하던데, 어머님께는 아직 이런 얘기 없었던 거죠?"

"네, 아직 집에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일로 이번 주 목요일, 11일에 선도위원회가 열리게 되었어요."

"선도위원회요?"

"거기에 정현이가 참석해야 하고요, 가능하시면 어머니도 같이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도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어머니께서 학부모 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셔야 해요.

오늘 정현이 편으로 의견서를 보냈으니 작성하셔서 내일 화요일까지 보내주셔야, 선도위원회에서 참고할 수가 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작성해서 내일 정현이 편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정현이랑 좀 더 얘기해 보시고, 새로운 사항이 있으면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거 참, 선생님께 송구스럽네요."

"다행히 빨리 알게 되어서... 괜찮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게 빨라요."

"그렇네요."

"그럼 목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하이톡 전화를 끊자마자 둘째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 나 선도에 가게 됐어. 근데 나 진짜 억울해."

"엄마 선생님이랑 방금 통화했어. 정현이가 친구한테 성인 사이트 링크 달라고 한 게 정말이야?"

"아니, 그게 억울하다는 거야. 내가 진짜 그걸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다솜(가명)이 먼저 자기가 그런 동영상 봤다면서, 자기는 성인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길래. 거짓말 같아서 장난으로 그럼 어디 한번 보여줘라고 한 게 다야. 그러고서 바로 '아냐, 안 보여줘도 돼.'라고 말했어. 이다솜이 핸드폰으로 애들한테 보여줄 때 나는 거기 없었어. 나는 다른 데서 놀고 있었어."

"그렇구나.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정현이가 그 영상을 보고 싶어서 보여달라고 한 걸로 오해한 것 같아."

"어... 그래서 선도 가게 되었다는 거야. 거기서 같이 본 애들도 다 선도 가게 되었어."

"그래? 전부 몇 명인데?"

"5명."

"이다솜이라는 친구가 보여줬다고?"

"어, 자기가 아는 오빠가 사이트 알려줬다고 하면서... 근데 나는 못 봤어."

"그래, 알았어. 선생님이 주신 학부모 의견서 종이 엄마 줘."

나는 의견서를 받아서 살펴보았다. 학생과 학부모 신상 정보 쓰는 란 이외에는 중앙의 의견란 하나뿐이었다.

'이런 건 또 난생 처음 써 보네. 뭐라고 써야 하지?'

인터넷에서 '선도 학부모 의견서'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어찌 됐든 이 의견서를 선도위원회에서 참고한다고 했으니, 소명을 적극적으로 적어야 덜 억울하겠구나, 싶었다. 내가 아이 문제로 '소명'이란 걸 하게 될 줄이야.


정현이가 사건이 있었던 때에 친구들과 놀다가 장난으로 링크를 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링크를 달라고 한 직후에 바로 "안 보여줘도 된다"라고 고쳐 말했다고 합니다. 전달받은 링크나 내용이 없었을 때에 다시 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현이의 말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특별히 해당 영상을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단순한 장난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장난으로라도 친구에게 링크를 달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부모님과 약속을 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현이에게 들은 내용대로 빈칸을 채웠다.

음란물 사이트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사이트를 알게 되고, 접근까지 쉽게 허용됐을까? 아니, 아이들이 모르고 있을 거라 믿은 내가 너무 순진했나?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함께 그런 것을 봤다는 사실이 어떻게 학교 측에 알려지고 선도위원회까지 열리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이런 일로도 선도위원회가 열리고, 징계를 받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비밀로 묻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는 오빠가 알려줘서 친구들에게 그 사이트를 보여준 거라는 그 친구의 속사정도 궁금했다. '아는 오빠'가 몇 살인지는 몰라도 무슨 의도로 초등학생인 여자아이에게 그런 사이트를 보여주고, 접속 방법을 알려줬는지가 계속 뾰족한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다. 이번 사건에서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사람은 그 ‘아는 오빠’인 것 아닌가 싶었다. 염려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 영상을 보여줬다는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학교에 신고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이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화가 나기보다 걱정이 무척 많이 되었을 것 같았다.

3일의 시간이 지나고, 목요일이 되었다. 선도위원회 출석일이었다. 왠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머리도 단정히 묶고 면접 갈 때나 입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 선도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을지 안 받을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니, 구직 면접 갈 때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로서의 나의 자리까지 심판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둘째와 함께 교무실로 가니, 선생님께서 대기실로 안내를 해주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친구와 그 아이의 엄마가 앉아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정현이와 나란히 앉았다. 긴장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입은 정장 바지가 좀 끼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때, 긴 생머리의 키가 큰 여자아이와 그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분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게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하셨다. "아... 괜찮아요. 아이들이 호기심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으로는 '이 아이가 그 아이구나.' 생각이 스쳤다. 그 아이는 선도위원회가 열리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되는지 내내 웃고 있었다.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한 귀여운 인상이었다.

20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처음에 안내해 주셨던 분이 우리를 불렀다. 선도위원들 앞에서 소명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들이 문을 향해 열려있는 디귿자 모양으로 빙 둘러 배치되어 있었고, 선도 위원으로 예상되는 분들이 쭉 앉아 있었다. 디귿자가 트여있는 위치에 빈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 앉았다. 앉아서 다시 둘러보니 왼편에 정현이 담임 선생님이 계신 것도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앉아 계시던 분이 종이를 들고 사건 개요를 쭉 큰 소리로 읽으셨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있자니 긴장한 탓인지 맞잡은 양손에 땀이 살짝 났다. 이어서 정현이에게 선생님이 질문을 하셨다. 정현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정현이는 친구들이 본 영상을 보았니?"

"처음에 이다솜이 틀었을 때 잠깐 보고, 저는 바로 다른 데로 갔어요."

"영상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니?"

"... 징그러웠어요."

"징그러웠구나."

선도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정현이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며 얘기를 하셨다.

"사실 저희가 걱정하는 부분은 성인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것 자체보다도, 아이들이 그런 영상을 보고 성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까 봐, 그 부분을 걱정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영상들은 여성이나 성관계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는데, 아이들은 여과 없이 받아들여서 실제로 그렇다고 믿기가 쉬워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이 영상을 봤다는 그 사이트는, 학교 측에서 항의를 했지만 여전히 보는 게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아마 그 영상을 본 아이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에 다시 들어가 보려는 아이들도 생겼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신고로 이번 선도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다음 주 안에 집으로 징계 처분 통지서 우편을 보낼 테니, 잘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이 얘기를 끝으로 그날의 우리 역할은 끝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음날이 방학식날이었는데, 오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하이클래스앱(알림장 앱)으로 공지가 하나 떴다. 규민(가명)이가 오늘 학원에 가지 않았다고, 혹시 규민이랑 연락이 되거나 어디 있는지 아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선생님께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규민이는 함께 동영상을 본 다섯 명 중의 하나였다. 정현이가 내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

"규민이 엄마한테 핸드폰 압수당하고 엄청나게 혼났댔거든. 그래서 자기 가출할 거라고 그랬었는데... 가출했을지도 몰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에이,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아는 오빠'가 한 행동으로 인해 대체 어디까지 사건이 커지는 것인가, 지금...

다행히도 규민이는 가출하지 않았다. 집에 잘 들어왔다고 선생님께서 해가 질 무렵에 소식을 남기셨다.

그렇게 방학이 시작되었고 16일에 마침내 학교로부터 집으로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뜯어보니 위와 같은 징계 처분 통지서가 들어있었고, 다행히도 조치 결정 내용에 "조치 사항 없음"이 적혀 있었다.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정현이에게 들으니, 다솜이는 10시간 상담 치료를 받고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 조치 결정 내용이었고, 규민이는 그 사이트 주소를 다솜이에게 받았다고 하여 5시간 사회봉사, 같이 있었다는 나머지 두 친구는 정현이와 마찬가지로 조치 사항 없음이었다고 했다. 무거운 처벌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성인물 사이트 동영상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아이들이 서로 링크를 주고받는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상한 정보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최근에 첫째가 얘기했던 것도 떠올랐다. 아는 친구 하나가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자기에게도 해보라고 권했다는 얘기였다. 절대 호기심으로라도 안된다고 첫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담임 선생님께 연락하여 얘길 했었다. 그래서 첫째가 내게 따지기는 했었지만.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둘째는 음란물 사이트 같은 것에 대해 판단 기준이 생겼을 것이다. 어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우려하는 것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테니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무언가 사건이 생겼을 때 부모님께서는 쉬쉬하셨다. 마치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알려지면 큰일이 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 당시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랬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된 지금, 그 침묵은 드러내야하는 것을 그림자 속으로 감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드러내고 부모가 함께 해결을 하려 노력을 보탤 때, 아이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 방학이라 늦게 일어난 첫째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춤을 춘다. 얘는 맨날 이런다. 텐션이 높다. 그런데 실컷 춤 춰 놓고 하는 말. “엄마 제가 텐션이 높으면 사실은 기분이 안 좋은 거란 거 아세요?”

나는 갑자기 할 말이 궁색해진다. “어어.. 그래? 몰랐네. 무슨 일 있었어?”

“아... 몰라요,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아무튼 그래요.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저만의 비밀이에요. 엄마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이거 뭐... 같이 춤이라도 춰 줘야 하나? 오늘도 첫째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던져졌다. 나름의 해석을 해보려고 머리를 굴리다가, 일단 뻣뻣한 몸으로 춤이라도 열심히 따라 하니 그걸 보고 활짝 웃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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