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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15. 2022

결국 나도 꼰대 엄마인가

'아빠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엄마한테 말하면 화내실까 봐 미리 아빠한테 말씀드려요.'


남편이 내게 문자를 보여준다. 아침부터 두 남자가 내 눈치를 살피던 이유가 이거였군.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거늘. 정면 승부가 안 되니 감히 측면 공격을 감행하다니. 남편은 조곤조곤 나긋나긋 내게 말을 하고 있지만 이미 내 머리는 빠른 속도로 예열 중이다. 아, 이제 본격적인 사춘기 전쟁이란 말인가.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큰아이는 봄소풍을 앞두고 잔뜩 들떴다. 코로나로 2년 동안 손발이 묶이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하는 날이 훨씬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중, 고등학교가 함께 움직이던 예년과 달리 이번엔 반별로 따로 간단다. 그리하여 정해진 곳은 에버랜드. 에버랜드까지 오가는 건 각자의 몫. 아침엔 내가 데려다 주기로 했지만 올 때가 문제였다. 공식적인 해산 시간은 오후 4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건 6시까지 가능하나 그 이후 시간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게 학교 방침이었다. 아들은 오랜만에, 그것도 일 년에 한 번인 봄소풍 때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가 원한다고 마냥 허락할 순 없었다. 코로나 상황인 데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에버랜드, 게다가 금요일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다른 아이들은 에버랜드 폐장시간인 밤 9시까지 노는 걸 허락받은 모양이었다. 아들은 '거의 모든 애들이 다 늦게까지 남는다'며 이미 실태 조사한 결과를 내게 내밀었다. '심지어 oo이도 오래 있을 거라고 같이 있자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oo 이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아이였다. 엄마 말대로 하면 자기만 홀로 일찍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한다며 아들은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 정중히 읍소했다. "부모님의 상황과 의견, 현재 동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제 의견을 제가 생각하는 이유와 최선의 해결책과 함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한번 읽어주시고 제 의견에 대해 생각해 봐 주시고 말씀해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창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야심한 밤에, 허허벌판 에버랜드에서, 보호자도 없이 아이들끼리는 노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했다. 피 끓는 이 녀석들이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 뭔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 어쩌려고 그러나. 다른 부모들은 늦게까지 노는 걸 허락했다니, 당혹스러웠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니 모처럼 마음껏 놀라는 뜻이겠지만,  아무리 마음을 바다처럼 넓히려 해도 도무지 아이에게 9시까지 놀라고 할 순 없었다. 집으로 직접 오는 버스도 없어 에버랜드에서 서울 강남까지 나온 후, 다시 1시간가량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여차 저차 하면 귀가 시간이 자정이 될 판이었다.


  "안 돼. 우리집 통금시간은 저녁 8시야." 단호히 말하고 돌아섰다. 며칠 동안 귀가 따갑도록 반복 재생한 말을 아이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남편은 평소와 달리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읽어주고 공감해주려 애썼다. 자신도 그 나이 때 친구들이 그리 좋았다고 했다. 울먹이는 아들과 대쪽 같은 아내 사이에서 남편은 퍽이나 난감해했다. 


 

© jmvillejo, 출처 Unsplash


아이는 어려서부터 친구를 좋아했다. 다같이 뛰어놀다가 먼저 집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했다. 난 미리 놀이시간을 분명히 약속하고 왜 먼저 들어가야 하는지 최대한 설명하려 애썼다. 집에 가기 30분 전부터 미리 언질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다. 평소 엄마 말을 잘 듣다가도 친구들과 놀 때면 끊임없이 조금 더 놀면 안 되냐고 묻고 또 물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내 인내심을 자극했다. 열여섯 살 아이가 친구들과 다같이 더 놀고 싶다고 거듭 요청하는 순간, 난 10년 넘게 무한 반복해온 상황이 떠올랐다. 아이 친구들은 아들보다 자유로웠다. 그 부모들의 허용범위는 우리보다 넓었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린 분명한 기준 아래 일관성을 갖고 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남편과 나는 밤새 뒤척였다.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가정들로 인해 내 아이가 눈물짓는 일이 생겼다는 게 심히 속상했다. 그렇다고 원칙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걸 알려주려 애써왔거늘. 사춘기 아들의 그늘진 표정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소풍 당일 새벽, 남편과 난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우린 에버랜드에서 7시까지 놀고 나오는 것을 허락하기로 했다. 대신 원한다면 저녁식사까지 친구들과 함께 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아이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집을 나섰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엄마, 저 이제 가요." 아이에게 문자가 온 시간은 오후 6시 37분. 밤을 찢어가며 놀 것 같던 친구 녀석들도 지쳤던지 대부분 그즈음 파했다고 한다. 24시간 꼬박 마음고생한 게 무색했다. 이리될 것을. 내가 조금 더 관대했어야 했을까. 부모와 친구 사이에서 아이가 많이 힘들었을까. 


친구 따라 놀러 나섰다가 엄마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내 어린날이 떠올랐다. 엄마의 꾸지람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내게 자책감을 불러오곤 하는데, 나도 아이에게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자아가 강한 아이, 나보다 생각의 그릇이 큰 아이를 대할 때마다 부모로서 어디까지 서야 하는지 매번 고민하게 된다. 열여섯 아이에게도, 부모인 우리에게도 처음인 올해 봄이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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