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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un 24. 2022

20년 전 그 카페를 그리워합니다

세상에 다시없을, 우리의 아지트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의 학교 근처에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후미진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모던했던 그곳엔 곰돌이 푸를 닮은 사장님이 있었다. 커피를 내리고 곁들임 쿠키와 케이크를 내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난한 백수 커플은 끼니마다 학교 식당을 전전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그곳을 들렀다.


안면이 트이고 친해지자 사장님의 곳간 인심도 후해졌다.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도는 날 카페를 찾으면 사장님은 레몬청을 두 배로 넣고 레몬 슬라이스를 크게 얹어 레몬차를 타 줬다.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땐 기분 전환하라며 장희빈 사약 사발 만한 커피잔에 진한 핫초코를 그득 담아냈다. 음료 한 잔이었지만 서글픈 날 보약이 따로 없었다. 멀리 있던 우리 엄마 역할을 사장님이 대신했다.


수도 없이 언론사 시험에서 낙방한 후, 우린 차례로 기자 타이틀을 달았다. 수습 생활에 지칠 때면 우린 한달음에 그곳에 달려갔다. 사장님은 세상에서 가장 개운한 스파클링 와인을 따르고 특급 비밀 치즈 케이크를 단정하게 잘라줬다. 주말에도, 생일에도, 명절 연휴 끝자락에도 우린 그곳을 찾았다. 기자 생활하면서 알게 된 화려하고 이름 난 곳도 많았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우리 커플의 상태를 알아맞히는 사장님은 그곳에만 있었다.


기자 2년 차에 우린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얼마 후, 사장님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늦도록 아이 젖을 물리고 설핏 잠들었던 어느 날 밤, 그의 누이가 대신 보낸 문자에 우리 부부는 말을 잃었다. 문상을 다녀온 남편을 통해 사장님이 그간 항암 치료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갓 낳은 아이를 끌어안고 부모 노릇한다고 정신없던 사이, 그는 투병했고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떠났다. 몸조리가 끝나면, 아이 100일만 지나면, 금의환향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안고 고향을 찾듯 카페를 찾아가겠다던 계획은 이룰 수 없게 됐다.


지금도 우리는 불현듯 떠오르는 사장님을 추억한다. 커다란 덩치에 동글동글한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주던 사람. 우리의 취업도, 결혼도 제 일처럼 기뻐했던 사람. 우리 아이들을 봤으면 분명 친조카처럼 예뻐했을 사람. 세상에 수많은 카페가 있고 우린 수많은 손님 중 하나였을 테지만, 여전히 남편과 난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아지트, 그 카페를 그리워한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탓을 환경으로 돌리는 난 자주 동네 카페를 찾는다.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고요함과 짙은 향의 커피, 선을 넘지 않는 카페 주인의 친절을 마주할 때면 허름한 건물 지하 1층에 아늑하게 자리하던 그 카페가 생각난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곱씹으며 오도카니 머물 곳이 필요할 때면 사장님은 어찌 알고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검정 피케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조용히 케이크를 건네던 사장님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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