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Aug 12. 2022

마흔 아홉 그녀는 할 말이 많았다

글 쓰는 그녀들의 이야기1

"저는 중년의 나이에 꾸중히 자기계발 중입니다 이런 스토리를 글로 쓰고 브런치 작가나 책을 써서 주위의 중년들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중년이면 보통 마흔 살 안팎의 나이를 말합니다. 물론 문화와 시대에 따라 구분은 다르지만,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요즘엔 50대까지 중년이라 한다죠. 제가 처음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블로그에 공지했을 때, 처음 문을 두드린 그녀의 정체는 '중년'이었어요. '자기계발중'이라는 말을 자기소개 키워드로 삼은 걸 보면 아이들은 어느 정도 자랐을 테고,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삶을 향한 열정이 큰 분이겠구나 싶었죠. 맞춤법에 살짝 어긋난 '꾸중히', 흔한 이모티콘 하나 없이 한 번에 써 내려갔을 담백한 두 개의 문장. 그녀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동시에 내 글쓰기 모임에 신청한 이유가 뭘까도 궁금했어요. 지금이야 부끄러움에 관계없이 '기자'였다는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처음엔 보통 오그라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깟 '기자' 뭐였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나, '기자'가 글쓰기 모임을 하면 엄청 잘 해야 할 것 같은데.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 걸 갖고 혼자 끙끙거렸더랬죠. 기나긴 공지글, 깨알 같이 박힌 수천 자의 글자 틈바구니에 눈에 띄지 않게 그 두 글자를 잘 밀어 넣었습니다. 그거 안 쓰니, 막상 내가 왜 글쓰기 모임 리더로 나서게 됐는지 명분이 서지 않더라고요. 쩝.


  처음엔 일주일에 글 딱 1편만 써서 내라고 과제를 드렸어요. 글쓰기 모임을 찾는 이들의 수준을 도통 가늠할 수 없었거든요. 과제 제출 마감일로 정해놓았던 그날, 그녀는 살포시 워드 파일을 카카오톡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리더'로, 소위 '글쓰기 선생'으로 처음 봐드리는 남의 글.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기자 선생'에게 처음 글을 써서 보낸 그녀도 그러했을까요? 


  그런데, 세상에. 그녀의 글은 A4 11장에 달했습니다. 1편만 쓰면 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를 어쩌나. <내가 중년의 나이에도 배움의 열정에 빠진 이유>라는 주제 아래 나열한 글의 제목은 11개. 그 가운데 5개의 글이 화면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가만가만 훑어보는데,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더라고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네 남매 중 막내로 자란 이야기,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연,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살면서 다양한 취미 생활을 이어가는 최근 근황까지. 꾸준히 자기 계발하는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눈치였어요. 보아하니, 자기 계발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하다가 생각의 물꼬가 어린 시절 하트무늬 티셔츠를 입고 아빠의 부고를 들었던 기억까지 파고들었던 거였어요.


  그녀에겐 분명 첫 글쓰기 자리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하얀 종이 위에 두서없이 늘어놓았습니다. 맞춤법, 오탈자, 문장 호흡 등 잘 쓴 글이 갖춰야 할 조건에 온전히 부합하진 않았지만, 전 컴퓨터 화면으로 잠시 인사만 나눴던, 그래서 이목구비의 모양새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그녀의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카페에 앉아 울컥울컥 삐져나오는 눈물을 찍어내면서요. 


 "선생님, 걱정하시더니 많이 쓰셨네요?" 

"아, 제가 너무 많이 보냈나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까지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생각난 걸 다 썼어요." 


 그녀는 잘 쓰려고 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서술했다고 했습니다. 기억을 걸러내지 않고 그저 쏟아낸 거죠. 정성 들여 좋은 글을 써보려고 했다면 그리 하지 못했을 거라고요.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목구멍 위로 밀어 올리지 않았던 옛이야기를, 가족에게도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았던 아린 기억을, 그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술술 꺼냈습니다. 피드백이 오가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오밀조밀 꿰어졌지요. 브런치 작가에도 이름을 올렸고요!


2년 전 만난 그녀는 지금도 제게 살가운 글벗입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한글 모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문해교사 일을 시작했고요. 우린 SNS에서, 브런치에서 글을 나누고, 서로를 떠올리며 안부를 묻습니다. 저와 만나 수다를 떨고 싶다며 연락한 그녀가 이런 말을 건넸어요.


"얼마 전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이 먹으며 글 쓰는 걸 배우고 브런치 합격한 게 참 잘한 것 같다고요. 지금부터 적어도 10년은 어떠한 외부적 요인이나 신체 나이와 상관없이 글쓰기는 계속할 수 있으니까. 글쓰기를 취미로 시작한 게 이리 큰 재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기자와 함께 글쓰기 어떠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