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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May 10. 2023

진심을 표현하면 일어나는 일

얼마 전 남편이 책을 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마음 같아서야 다 드리고 싶지만 책 사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읽고 싶다고 관심을 보인 분들 중 몇 분께 보냈다. 누구를 주고, 누구를 아니 줄 수 없어 공평하게 '제비 뽑기'를 해 하늘의 뜻에 맡겼지만 책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 괜스레 죄송했다. 책 선물을 받은 분들은 잘 받았다며 인증샷을 찍어 보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한 컷,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읽고 있다고 한 컷. SNS에 공유한 마음이, 주변에 추천하겠다는 말이 고마웠다. 


며칠 후, 예상치 못한 연락이 이어졌다. "선생님, 책 너무 재미있겠어요! 남편분에게 인사 전해주세요." 책에 별로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직접 구매하려고 일부러 내 제안에 모르는 척 한 분들. 2권, 3권 더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한 분들. 책을 받고 감사하다며 내가 잘 가는 단골 카페에 직접 전화해 기프트 포인트를 넣어주신 분도 있었다. "선생님, 남편분과 오붓하게 커피 드세요!"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내 생각이 닿지 않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헤아린 그들이 감탄스러웠다.


며칠 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 폐업 소식이 전해졌다. 40년 가까이 한인 사장이 운영하던 그곳은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단골집이었다. 그는 주급을 받지 못한 배우들에게 '나중에'라며 샌드위치를 그냥 건네고 노숙자들에게도 음식을 나눴다. 맛있는 샌드위치와 따뜻한 마음을 받았던 이들은 폐업하는 날 모여 그에게 노래를 선사했다. 감사 메시지를 담은 기념사진과 2400만 원에 달하는 성금도 모아 전달했다.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성껏 샌드위치를 만든 그에게 손님들은 진심 어린 감사를 기꺼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전했다.


출처 : 틱톡 캡처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인 대부분은 자기가 받은 게 있으면 꼭 갚고 약속을 지킨다고. "한국인의 '정'과는 좀 다른데 깊숙이 들어가면 의리랄까, 이웃에 대한 신뢰 같은 게 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계산적인 말로 인식되곤 한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지 더는 내가 손해보지 않겠다는. 하지만 이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받은 감사를 기억하고 갚겠다는 마음은 의리이자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신뢰가 맞다. 


"우리 사이에 무슨, 꼭 말을 해야 알아?", "내가 그간 한 게 얼만데. 그 정도는 당연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말하지 않아도 아는 '정'이라는 게 있기도 하지만, 우린 안다. 누군가에게 심히 고마운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 올리오면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에도 진심이 들어 있는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지 우린 안다.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을 대하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무언가 바라고 베푼 호의는 아니지만 마땅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되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닫히고 관계도 시들해진다.


그동안 난 과연 어떻게 사람들에게 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당장 큰 손익이 걸려있지 않다는 이유로, 의례적인 인사로 퉁치려 하진 않았을까. 진심을 다해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이들의 언행은 다르다. 그들은 준 자에게 바로 돌려받겠다는 마음으로 살지 않는다.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받은 기쁨과 행복을 다시 또 다른 이에게 흘려보낸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인격이 되고 태도가 되어 결국 자신을 비춘다는 것을 그들은 알 게다. 


예기치 않은 특별한 마음을 받을 때 한없이 기쁘고 놀랍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이들이 내겐 선물이자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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