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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ul 30. 2023

푸바오 같은 둘째, 너마저 사춘기라니

"엄마, 다리 좀 오므리면 안 돼요?"

"나 다리 안 폈어. 네가 엉덩이를 의자 뒤에 붙여 앉어."

"전 이미 바로 앉았어요."

"나도 이게 최선이야."


지난 주말,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둘째 아이와 시비가 붙었다. 우린 김치찌개집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뿐인데 자꾸 내 다리가 자기 다리에 걸린다며 인상을 썼다. 보다 못한 남편이 나섰다."아들들, 너희 둘이 자리를 바꿔야겠다. 앞으로 당신하고 둘째는 서로 마주 보고 앉지 말고." 뾰로통해진 둘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째 녀석


나의 소울메이트, 딸 같은 둘째 아들이 요즘 사춘기다. 얼마 전 "요즘 짜증 나니까 건드리지 마요. 저 사춘기예요."라고 말해서 남편과 난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우리에게 아기 같은 녀석이 제 입으로 '사춘기'라고 말하다니. 아직 본격적으로 그분이 오기 전이군. 진짜 심각한 사춘기는 제 입으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 법이다. 첫째는 중3이 돼서야 비로소 전과 다른 분위기를 풍겼고 그래도 비교적 얌전하게 사춘기를 넘겼다. 둘째는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중2'지만 아빠에겐 '푸바오' 못지않은 귀염둥이이고 엄마에겐 마음을 구석구석 헤아려주는 살뜰한 딸 같아 '사춘기'라는 선전포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근래 자꾸 부딪히기 전까지는.


요 녀석은 아침에 눈 뜨면 가장 짜증스럽다. 최근 다이어트를 한다고 12킬로그램을 뺀 후로 짜증의 강도와 빈도가 상향했다. 보통 둘째의 심기가 불편할 땐 먹을 걸 들이대면 해결이 되는데 이젠 음식을 권했다가 신경질을 돌려받는다. '모닝 짜증'의 원천은 대부분 아침식사 메뉴와 옷이다. 살이 꽤 많이 빠져서 이제 평소대로 먹어도 괜찮은데 '밥은 헤비해서' 싫고, '과일은 당이 들어있어서' 싫고, '샐러드는 질러서' 싫다. 턱선이 살아나고 뱃살이 들어가 아무 옷이나 입어도 괜찮은데 꼭, 반드시, '그 옷'을 찾는다.


며칠 전엔 검은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고 밤 10시가 넘어서 세탁을 요구했다. 내가 해주기로 약속한 거니까 세탁기를 돌렸다. 평소 아이가 애정하는 티셔츠라 절대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줄면 낭패다. 장마철, 아침저녁으로 비가 내리는 꿉꿉함에도 안방에 빨랫대를 펴고 가지런히 널어드렸다. 다음 날 아침, 옷은 역시나 다 마르지 않았다. "다른 티셔츠 입으면 안 돼?" "안 돼요." 하는 수 없이 건조기를 약하게 돌려 둘째에게 내밀었다.


내 마음이 한없이 좋으면 상관없는데 컨디션 난조일 때는 둘째의 사춘기 증상을 다 받아내지 못한다. 감정이 널뛰는 아들 못지않게 어미도 일관성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은 바쁜 아침에도 기꺼이 티셔츠를 세탁해 건조기에 살짝 돌려 아이에게 건넨다. "아들! 다 됐어! 엄마 능력 대단하지?" 상큼하게 하트도 날려준다. 하지만 날은 습하고 할 일은 쌓여 있고 학교 갈 준비는 덜 됐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선 나의 인내심이 빠른 속도로 바닥난다. "티셔츠가 이것밖에 없어? 교복도 아니고. 체육복도 아니고. 꼭 이걸 입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사이좋았던(?!!) 엄마와 둘째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내던 모자가 자꾸 날카로워지니 남편이 중재에 나섰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착하잖아. 엄마 표정 읽을 줄도 알고. 저 정도면 양호하지?" 나도 안다. 우리 집 애들이 착하다. 엄마가 기가 세서 아들들이 제 고집을 끝까지 부리지 못하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 짠할 때도 있다. 어른 되기 전에 제 속을 다 드러내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답답해서 소리도 질러보는 거지. 부모 앞에서나 그러는 거지. 엄마니까 좀 너그럽게 받아줘야지. 다 알면서도, 잘 알면서도 이전 같지 않은 아이를 보면 나도 성이 난다. 


아이의 사춘기가 엄마의 갱년기와 맞닥뜨리면 전쟁이란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혹자는 갱년기가 우세라는데, 그렇게 해서 아이에게 상처 주고 승리해 봐야 뭔 소용인가. 마음 좋게 내가 봐줘야겠다. 내가 이기면 갱년기라는 방증일지도 모르니까. 요즘 자주 열이 오르내리지만 난 아직 갱년기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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