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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Feb 11. 2022

사람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진 않아

미국에서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 적이 있다. 캠핑팀에 속해 1주일 플로리다를 도는 여정이 끝나면 나 혼자 야간 버스를 타고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기차를 타긴 시간이 애매했다. 하룻밤 묵을 숙소를 따로 구하기도 부담스러워 경비도 절약할 겸 밤새 버스에서 잠을 청할 계획이었다. 팀 리더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펄쩍 뛰었다. "야간 버스를 너 혼자 타겠다고? 그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당시 동양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국제 범죄가 자주 발생하던 터였다. 그는 캠핑에 참여했던 다른 멤버들을 모두 보내고도 날 붙잡고 설득했다. 자신의 캠핑카를 내줄 테니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일찍 기차를 타고 움직이라고 했다. "버스비 까짓 거 하룻밤 안전하게 묵는 비용으로 썼다고 생각해. 내가 숙박비 안 받을 테니." 그는 날 친히 데리고 기차역에 가서 예매를 도와줬고 장을 보고 간단한 저녁을 해 줬다. 그리고 커다란 캠핑카를 내게 내주고 본인은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난 다음 날 안전히 기차를 탔고 남은 여정을 무탈하게 마무리했다.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무식해서 용감했던 20대 한국 여성을 걱정하는 이들을 여행길에서 자주 만났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한 나를 심히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차를 태워줬던 중년 아저씨, 버스비가 모자라 어쩔 줄 모르던 나 대신 동전을 내준 아줌마, 내 몸 만한 트렁크를 들어주고 옮겨주던 일본 청년. 캠핑 리더 역시 내가 만났던 천사 중 하나였다. 그들 덕분인지 난 수많은 여행지에서 우범지역은 용케 잘 비켜 다녔고 이렇다 할 위험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 않은 상황에 만나 내게 베풀었던 그들의 호의를 난 기억한다. 불쑥 등장한 낯선 친절은 내 청춘의 여행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난 길에서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들이 묻지 않아도 길을 가르쳐주고 떨어진 물건을 주워준다. 도와달라 하지 않아도 그들의 난처한 얼굴을 보면 오지랖 넓게 손이 나간다. 


얼마 전, 오래도록 친하게 지낸 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실상 별 것 아닌데 내가 그들을 생각한 만큼 그들은 날 헤아리지 않았다는 게 서글펐다. 그들이 나에게 이제껏 호의적이었지만 늘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또 기대한 모양이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면 서운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자꾸 다른 이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구겨 넣으려고 한다.


예전 회사 다닐 때, 오해받고 속상해하던 내게 한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사람들 마음이 다 너 같지 않아." 

그 한 마디를 듣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아. 사람들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아. 그때 이후로 지금도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생채기가 생길 때마다 이 말을 되뇌인다. 그들이 일부러 나 힘들라고 그러진 않았을 거야. 다 사정이 있었겠지. 나라고 늘 다른 사람들한테 좋기만 했을까.


그리고 내게 진심을 건넨 이들을 떠올린다. 내게 무엇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선한 마음으로 내게 베풀었던 그들. 인생의 선함은 반드시 들고 나는 방향이 같지 않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 내게 건넨 따뜻함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전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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