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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Mar 18. 2022

우린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다

남편을 호텔로 보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그에게 노잣돈까지 얹어서 통 크게 숙박비를 건넸다. 그리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으니 잘 됐다. 중년 남성은 때때로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는 게 필요하다나. 그리도 원했던 고독한 동굴생활, 이 참에 마음껏 누리시게나.


남편을 보내고 한잠 거하게 자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벽에 등을 붙이고 책을 읽는다. 벽에서 한기가 오르는 게 등이 시리다. 작은 이불 하나 둘둘 말아 등에 대고 나니 찬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진다. 젖은 손수건을 다림질하면 이내 마른 부분과 젖은 부분이 확연하게 차이 나듯, 온기 덕에 젖은 부분이 점차 줄어들 듯.


이왕 늘어지는 것, 좋다. 우리도 배달 천국을 누려보자. 플라스틱 포장 용기에 담겨 오토바이를 타는 순간 맛이 반감되는 배달 음식에 배달료까지 내야 한다는 건 참으로 마뜩잖은 일이다.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의 성화에 치킨과 돈가스, 파스타를 주문한다.


그 사이 천사도 다녀갔다. 그녀는 더 이상 옆동네에 살지도 않는데 어찌 내가 남긴 말을 주워듣고 치타 배송을 자처했다. 커다란 노계를 푹 삶은 누룽지백숙과 강남 엄마들이 안심하고 먹인다는 어묵과 떡볶이, 껍질 벗긴 순대를 문 앞에 두고 갔다. 내가 빵순이라는 걸 기억하고 거대한 빵 봉다리까지 챙긴 세심함이란.


잠시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부드럽다. 올해 3월을 이렇게 보내는구나.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나름 여유로운 쉼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늘 휴식을 바라지만 일상은 우리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내어두지 않는다. 비자발적, 강제적 휴식이 주어지면 시간이 남아도리라 기대했는데 삼시세끼 챙겨 먹고 치우는 시간이 만만찮다. 잘 먹고, 잘 자고, 생존 욕구에 충실한 하루는 어느 때보다 빨리 간다.


밖은 어느새 봄인데 내 마음은 살얼음처럼 얼어붙었다. 만사가 심드렁, 주변 어떤 것도, 사람도 관심이 무뎌진다. 오늘도 어제처럼, 엊그제처럼, 며칠째 집 안에 박혀 있으면서도 누구에게 연락해 안부 물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양가 어른들도 다행스레 연락하지 않았다. 행여 걱정하실까 무소식이 희소식인 듯 지냈다. 7년 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친구한테도 "내가 전화할게" 하고 답하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간이 내게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어느 때고 쉬운 적은 없었지만 도둑처럼 찾아온 지난 한 주동안 몸도 마음도 부대꼈다.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마음의 풍랑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깊었다. SNS를 수놓는 화려한 이미지를 바라볼수록 자꾸 나는 못나고 작아졌다. 이 사람들, 이리 잘 지내느라 내게 안부도 묻지 않는 건가. 연락하지 않는 나 자신을 생각지는 않고 쓸데없이 서운한 감정이 밀려든다. 사람 많은 곳은 가지도 않았고, 아이들 등하교를 제외하곤 지난 한 달간 집에서 반경 15킬로미터를 넘질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왕 이렇게 된 일, 잘 쉬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잘 싸워 슈퍼 항체가 생기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다독거리지만 자꾸 작은 틈 사이로 부정적인 생각이 파고든다. 왜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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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몸살, 두통, 인후통, 나른함, 미각 및 후각 상실, 식욕저하, 무기력함을 차례대로 경험했다. 뉴스에서 보던 증상이 내 몸에 순차적으로 나타나니 신기할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몸의 증상이 달라진다. 어제는 몸살, 오늘은 인후통, 매일 한 가지씩 징검다리 돌처럼 내 몸에 놓이더니 하루가 다르게 또 사라진다. 이제 집 나간 미각과 후각, 식욕만 돌아오면 된다. 덕분에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입맛도 없지만 고약한 냄새도 맡지 못하니 웃픈 현실이다.


정확히 12일 전, 큰아이의 PCR 검사를 위해 25킬로미터를 달려 개인 병원을 찾았다. 주말, 보건소가 문을 닫은 탓에 시골 병원 마당엔 검사 대기줄이 뱀처럼 길게 똬리를 틀었다. 유독 차가웠던 바람을 맞다간 증세가 악화될 것 같았다. 폭풍 검색 후 다시 37킬로미터를 운전해 연고도 없는 지방 병원에서 드라이빙 스루 검사를 받았다. 다음 날, 아이의 확진 판정에 나머지 가족들은 동네 보건소에서 3시간 줄을 서야 했다. 28시간 만에 남편을 제외한 나와 두 아이는 모두 코로나 확진자가 됐다. 그리고 7일간 격리됐고, 3일을 더 몸을 사렸다. 엊그제에서야 비로소 난 문 밖으로 첫걸음을 뗐다. 쓰레기 버리러.


열흘만에 집 밖으로 나간 재활용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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