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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Feb 04. 2022

운동하기 싫은 100가지 이유가 있다지만

"그렇게 무리하다가 지쳐 쓰러질 거예요.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좀 하시죠."


일하는 재미에 빠져, 사람들의 환호에 취해 쉼 없이 달리지만 그러다 분명 탈이 날 거라고 그랬다. 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초면에 가까운 그가 건넨 조언은 예리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건강상식이기도 했다. 계획만큼 속도가 따라주지 않아 일이 쌓이고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이 점차 뒤로 밀려갔지만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잠을 줄이고 사소한 잡무를 걷어내 시간을 벌면 밀린 일쯤이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운동의 필요성을 몰랐던 것도,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일을 본디 싫어했던 것도 아니다. 비록 100미터 달리기는 20초 근방에서 오가고, 철봉 매달리기는 10초를 넘기지 못하며, 공 멀리 던지기는 13미터가 최고 기록이지만, 오랜 시간 천천히 걷고 산을 오르는 기쁨 정도는 알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할 일이 늘면서 난 가장 먼저 '운동'에 할애한 시간을 다른 것에 양보하기 시작했다. 

운동은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걷기 시작하면 1시간은 채워야 할 것 같아 멈추지 못했다. 샤워까지 마치고 책상에 앉으면 이미 2시간이 지났고 몸은 나른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운동을 일정에서 아예 지웠다.


몸은 정직했다. 잠시 쉬는 틈을 타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골반을 중심으로 허리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순식간에 일어난 내 몸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내 것이지만 내 것 같지 않은 허리를 부여잡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이러면 안 돼, 내가 이럴 리 없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기인했던 걸까. 세수하는 일도, 양말 신는 일도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비로소 몸을 침대에 뉘었다. 배꼽 사이로 치밀하게 붙어버린 포동포동한 살이 손에 잡혔다. 오래 버티고 앉아도 끄떡없을 코어 근육은 내게 없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존 레이티는 <운동화 신은 뇌>에서 운동 없는 삶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운동 부족이 우리의 뇌를 죽음으로 이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실제로 뇌가 오그라든다." 그는 권위 있는 교수가 맞았다. 이미 내 머릿속이 딱딱한 고무지우개로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던 터였다. 어릴 적 쓰던 네모난 점보 지우개,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가는 바늘조차 쉽게 들어가지 않는 지우개가 내 머릿속에 들어찬 듯 답답했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 글 쓸 영감 따윈 사라진 듯했다.


벼랑 끝에 이르렀으니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루 15분, 계단 오르기를 시작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15분! 5층쯤 오르니 숨이 가빠진다. 8층, 9층, 10층에 이르자 심장이 벌렁거려 견딜 수가 없다. 다리가 아픈 건 고사하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고층 계단으로 오가는 사람은 없겠지. 마스크를 살며시 내리고 입을 벌려 가쁜 숨을 내쉰다. 후아, 후아. 이러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겠어. 헉헉, 숨 막혀 죽겠다 싶을 때 17층 아파트 꼭대기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1층, 2층, 3층. 잠깐 쉰 덕에 조금 오를만하니 또 숨이 턱에 찬다. 모두 합해 20층째. 이제 그만하고 싶다. 다리가 질질 끌려 올라간다. 조금만, 조금만. 그렇게 계단으로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기를 두어 번 하니 15분 알람이 울린다. 첫날 오른 층수는 모두 44층. 마라톤을 뛴 양, 얼굴과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매일 15분 계단 오르기


단시간 심박수를 끌어올린 첫날, 난 하루 종일 신이 나서 계획하지 않은 일까지 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겨우 15분이었지만 효과는 짜릿했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심장이 기지개를 켠 듯, 쪼그라진 심장 구석구석 깊게 파인 주름이 쫙 펴진 듯 가슴속이 시원했다. 마치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장시간 구겨졌던 다리를 힘껏 뻗었을 때 기분이랄까.


계단을 오르고 나면 뭔가 적극적으로 하고픈 마음이 늦도록 유지됐다. 집중력이 높아져 일처리 속도도 빨라졌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해가 떨어지면 기력이 떨어져 몸이 바닥에 붙곤 했는데 저녁식사를 하고도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오호,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꽤 괜찮은 상태로 하루를 산단 말이지! 운동화 끈만 졸라매면 두뇌를 바꿀 수 있고, 유산소 운동을 하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뇌세포마다 가지가 나와 서로 연결되고, 운동하면 그 가지가 자라고 새로운 꽃봉오리가 생겨 기능이 강화된단다. 다시 오지 않을 올 한 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면 내 인생에도 망울진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운동하기 싫은 이유는 100가지도 댈 수 있다. 작심삼일의 고비는 지났다지만 현관 밖을 나서기 전, 고뇌의 순간은 여전해서 운동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한다. 과거의 뇌가 나를 붙들어 앉히기 전에 후다닥 운동화를 신는다. 계단을 오른 지, 오늘로 9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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