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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May 26. 2019

마지막 남은 종속의 사슬, 여성 종속의 기원

밀(J.S. Mill)의 <여성의 종속> 다시 읽기

<여성의 종속> 1장 역사의 순리,

여성 종속의 기원과 반박


종속의 기원

현재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있는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것이 타당하고 양심적이며 진지한 고찰 끝에 만들어진 것인지 살펴보는 것으로 <여성의 종속> 시작된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제도는 충분한 비교와 논의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여명기에 남성에 비해 여성의 육체적인 힘이 부족한 면 여성은 남성이 기대하는 것을 만족시키려고 애를 썼다. 밀은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여성이 일부 남성에 종속되었다고 본다.


강자의 법칙이 통용되려면 사회 전체를 위한 공익이라는 명분이 필요한데 여성의 종속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남성만의 이익을 위해 형성되었다. 또 다른 불평등 제도인 노예제도마저 최근 계약제로 전환되고 있는데 여전히 여성의 종속은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종속> 표지



남성의 지배가 어떠한 정당성도 가지지 못했지만 다른 어느 지배체제 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이러한 지속성은 기존 체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종속을 지속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을 교육에서 배제시켰다. 여성이 경쟁력을 갖추고 가정이 아닌 나른 일을 선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여성에게 가정을 강요하였다.


단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에
남성 가운데 일부 계급이 아니라
그 전체가 권력을 행사한다

종속은 힘의 논리와 자연성에서 근거를 찾는다. 

강자가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일임을 강조한다. 밀은 이에 대해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지배가 어디 있겠냐고 반박한다. 절대왕권도 이것이 유일하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정부형태라고 주장하였고 가부장제 역시 동일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다는 개념은 문화마다 다르며 자연스럽게 여기는 감정마저 관습의 영향을 받는다. 여왕의 지배를 경험한 영국은 이를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이를 부자연스럽게 여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성의 시대에 탁월한 지성인으로 길러졌던 밀은 종속을 비판할 때에도 자신의 이러한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아마조네스(Amazones)와 강하게 길러졌던 스파르타 여성을 예로 들어 반박하였다. 문화권마다 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는 ‘자연스럽다’는 개념으로 종속을 주장할 수 없음을 보였다.   



여성의 종속이 다른 종속과 다른 점은 남성은 여성이 복종하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성의 마음까지 지배하고 싶어 한다는데 있다. 즉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주길 바라며 이를 위해  교육을 활용한다. 

여성은 교육을 통해 남성이 기대하는 여성으로 길러지며 가족 안에서 희생하는 것을 훌륭한 덕목이라고 배운다. 그리고 애초에 인간이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와 사회적 야망 자체를 품지 못하도록 길러낸다. 이러한 집중적인 세뇌 때문에 여성은 종속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성에 끌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생계를 철저하게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적극적인 해방운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밀은 속박받는 계급 치고 한 번에 완전한 해방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에 기반 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밀은 여성 해방의 주체는 여성 자신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사회의 진보는 불평등한 권리 구조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고
강력하게 거부하는 데 있다.

     

역사가 시작하는 단계에는 강자의 힘에 약자가 복종하는 것이 도덕의 기본이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강자의 관용과 보호 아래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게 된다. 일종의 자연 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계약 상황이라 볼 수 있는데 밀은 그다음 단계도 이야기한다. 정의를 추구하며 평등을 누리는 단계로 과거의 정의가 평등한 결사에 기초하고 있다면 이제는 공감(共感)에 바탕을 둔 결사까지 포함한다. 평등한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뿐 아니라 상호 간의 수준 높은 동정심이 정의의 토대가 된다고 보았다.



밀이 살고 있는 근대 사회가 가지는 이전 시대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성취적 지위 획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좋은 기회를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온전한 자유인이라 할 수 없다. 여성의 선택을 제약하고 교육의 기회와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아직 근대의 세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 자유인들은 근대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여성은 아직 인류의 진보 과정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당대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본성의 차이가 없으며 환경에 의해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은 교육의 기회도 공평하게 누리지 못했고 어렵게 교육받거나 독학을 통해 탁월한 지성을 갖춘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는 능력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이라 말할 수 없고 이것이 본성의 차이라고 볼 수도 없다.

     

     



<여성의 종속> 2장 왜곡된 결혼 생활

- 결혼은 어떻게 여성을 종속시키는가    

        

사회에는 결혼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결혼에 대비해서 여성을 키우고 있다. 지나치게 매력 없는 탓에 남성이 외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여성은 결혼을 반드시 추구해할 목표로 삼고 있다.
- <여성의 종속> 제2장 왜곡된 결혼생활 中-



밀은 문명의 발전과 기독교의 등장 덕분에 여성들도 정당한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는 당대의 주장을 가정에서 받는 여성의 억압의 사례를 통해 반박한다. 

영국의 고대법은 남편을 여성의 주인(lord)으로 불렀으며 여성은 남성의 허락 없이는 재산도 소유할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을 보면 그 시절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있다. 딸만 둔 아버지가 법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딸이 아닌 먼 남자 친척에게 상속해주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자 딸들 중 한 명을 그 먼 친척과 결혼시키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시대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그래서 가정 안에서도 남성에게 강하게 종속되어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밀은 심지어 고대 로마 노예들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정해진 일이 끝나면 일정한 한도 안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나 지금의 여성들은 이를 누리지 못함을 들어 가정 내 종속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밀은 “남성은 여성의 기분과 상반되더라도 남성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강요할 수 있다”고 비판하며 부부간 성폭력 문제가정 내 여성의 종속상황의 예로 든다.

1980년대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부부 사이의 강간에 대해 면책해주었다.

한국의 경우 2009년에서야 부부 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한 첫 판례가 나왔고 2013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부부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였다(2012도 14788·전도 252).

최근에 들어서야 부부 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밀은 당대에 이미 이 문제를 비판하였다.



가정 내에서 목격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으로,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더라도 모든 위대한 좋은 일-가족-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므로 (여성이) 이를 감내하라는 당대의 인식에 대해 비판한다. 밀은 노예제나 절대주의 정치체제, 절대적 권한을 휘두르는 가장제 등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것의 가장 훌륭한 측면을 부각한다고 보았다. 아무리 가장 좋은 면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밀이 가정 내 종속의 문제를 비판하는 논리 중 가장 탁월한 근거는 종속관계가 유발하는 폭력성의 문제이다.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아랫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밀이 성에 대한 불평등에서 비롯된 종속과 연령의 차이와 생계 책임 여부에서 비롯된 불평등을 구분한 것도 이전에 논의되지 않은 지점까지 논의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Cartoon from The Vote, a newspaper publishedby the Women's Freedom League (February, 1911)



여성성의 신화, 자기 희생성

여성은 극단적으로 추앙되는 성녀와 배척해야 하는 마녀로 분류되었다. 여성성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평가가 오갔는데 여성에 대한 혐오적 풍자에 기반 한 정의도 문제지만 여성성을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것도 문제다.


밀은 여성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자기 희생성을 여성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여성을 제약한다고 보았다. 밀은 성평등이 실현되면, 훌륭한 여성이라고 해서 최선의 남성보다 자기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남성은 현재 보다 덜 이기적이고 자기희생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밀은 여성이 남성 보다 더 낫다는 말 역시 여성 입장에서는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반어라고 본다. 이 지점에 이르면 밀이 당대만이 아니라 현대 보통의 남성이 깨우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해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남성이 성차별을 발견한다면 여성은 자각한다. 여성성에 대한 과도한 신화화가 가지는 기만적이고 이중적인 시각과 이에 대한 제약은 남성이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밀은 근대와 현대 사이에서 현대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공론화하고자 하였다.

     

     

<여성의 종속> 3장 역할과 직업의 평등

- 길들여진 여성, 만들어진 성()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정신적 차이는 교육과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특별히 열등하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남녀 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근거가 없음을 입증하도록 하겠다.
- <여성의 종속> 제3장, 역할과 직업의 평등-

 

밀은 능력주의자이다. 심지어 <대의정부론>에서는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의 참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밀은 능력주의가 받아들여지기 위해 먼저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성장시킨 역량을 사회참여를 통해 입증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능력주의의 전제에 동의한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타고난 본성보다 교육의 기회를 포함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양육되지 않았다면 그 결과만 두고 타고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 밀의 논리이다.



이후 이러한 밀의 주장은 1949년 <제2의 性>에서 시몬 드 보브아르(Simone de Beauvoir)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시 논의된다. 제1의 성인 남성과 제2의 성인 여성의 차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비주류인 여성은 사회와 가정에서 제2의 성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보브아르는 여성이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시몬 드 보브아르(Simone de Beauvoir) 사진, <제2의 성> 책 표지



밀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주장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논리적 근거 외 역사적 사례와 엘리자베스 여왕, 잔다르크 같은 대표적 인물도 함께 제시한다. 대문호나 위대한 여성사상가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대해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만큼이나 사유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제공되지 못했음을 들어 반박한다.


여성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평정심을 요구하는 업무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 역시 반박해낸다.

여성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비이성적인 고정관념은 철학이나 엄밀한 분석에 바탕을 두기보다 그저 경험적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여성의 본성에 대해 문화권마다 다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동방에서는 관능적인 존재로 보는 반면 영국에서는 천성적으로 냉정한 존재라고 말한다. 여성이 감정적이고 변덕스럽다는 인식은 프랑스와 1세가 툭 전진 한마디가 전 세계에 퍼진 것으로, 일종의 프랑스식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문화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러한 논리적 오류를 구별하 반박하고 있다. 영국 남성은 어떤 사물을 결코 본 적 없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소극적 오류인데 비해 프랑스 남성은 눈으로 직접 보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나, 반드시 존재한다고 보는 적극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인류의 절반에게 족쇄를 채우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해 버려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해도 과연 우리는 잃는 것이 전혀 없을까? 그들이 사회적 존경과 명예를 얻을 기회를 봉쇄해버리거나 스스로의 책임 아래 각자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도덕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 <여성의 종속> 제3장, 역할과 직업의 평등-

    

앞에서 여성이 열등하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입증하였다. 그래서 밀은 이를 이유로 직업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부당한 일이 된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재능을 제한하고 이들에게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동시에 사회 전체의 공공의 이익에도 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량 있는 여성의 능력을 사회가 활용할 수 없다면 이는 남성을 포함한 사회 전체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종속> 4장 여성해방이 남성도 구원한다.

     

  울스턴 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근거를 들어 성평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밀은 신을 가져오지 않고 당대의 모순적인 주장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시각을 오직 논리구조를 통해 반박해 나갔다.


매리 울스턴크래프트 초상화와 기념우표


밀은 아버지와 함께 플라톤의 논리학과 변증법, 스콜라 학파의 논리학 교과서와 홉스의 <계산학 즉 논리학>을 공부하였다. 논리학에 대한 공부와 훈련을 통해 탄탄한 논리구조를 구축한 밀은 <논리학 체계 System of Logic>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벤담의 공리주의를 통한 도덕성과 행복 원리 적용의 과학화 과정도 밀의 논리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밀은 최대의 행복(the greatest happiness)이라는 벤담의 표준을 교육으로 익혀왔지만 15살에 뒤몽(Dumont)이 대륙 사람들과 세계 사람들을 위해 벤담의 사상을 해설한 <입법론 Traités de Législation>을 읽고 비로소 공리주의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밀은 종교적 회의론, 공리주의, 환경론, 민주주의와 논리학, 경제학을 중시하는 태도가 자신이 가진 사고방식의 기초라고 설명한다. 여성의 종속이 가지는 도덕적 문제와 행복 원리 역시 이러한 시각으로 풀어간다.


밀이 반박할 때 주로 사용한 방식은 반증이다. A는 B이다(A→B)라는 주장은 A임에도 B가 아닌 사례를 보일 때 반박된다. 주로 역사적 사례나 인물, 문화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경우를 반례로 들었다. 그다음으로 사용한 논리구조는 상대방의 전제를 수용했을 때 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남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주장에 수긍한다. 당신의 주장이 맞다면 그로 인한 결과도 일치해야 하는데 주장과 달리 모순적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그 전제는 틀렸다는 것이다.


종속이 가지는 문제와 이를 해결해야 함을 설득하는 과정은 당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종속이 가지는 문제, 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시각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며 진행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종속이 남성에게도 유해함을 들어 남성을 설득하고 있다.



성공하는 모든 남성들의 삶 뒤편에는
실패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삶이 있다    


흑인 노예제가 폐지된 지금  결혼제도야말로 모든 능력을 다 갖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자비에 매달린 채, 그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해주기만을 간절히 희망하며 살아야 하는 유일한 경우가 되고 말았다.
가정에서 신음하는 여성들을 빼고 나면 더 이상 법적으로 용인된 노예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여성의 종속> 제4장 여성의 해방이 남성도 구원한다 中


  1863년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근대에 진행되었던 프랑스혁명은 바로 인민을 해방시키지 못했지만 이 개념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점차 신민에서 시민으로, 정치적 종속에서 해방되기 시작하였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



1863년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며 근대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종속의 사슬이 끊어졌다.  

노예제가 폐지된 6년 후 밀은 <여성의 종속>을 출간하며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밀은 여성은 스스로 해방되어야 하지만 생물학적 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지배적 권위를 누리고 있던 남성이 계몽되어야 성에 의한 종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여성의 해방이 남성에게도 도움된다는 논리를 3가지의 근거를 가지고 진행한다.


  첫째, 정의의 법칙이 아닌 힘의 법칙에 의한 지배가 가지는 문제는 남성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앞서 논의하였듯 종속적인 관계에서 지배자의 지위를 누리는 사람은 비지배 상태에 놓인 사람을 억압하려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기 쉽다. 사회의 진보는 불평등한 권리 구조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고 강력하게 거부하는 데 있다는 밀의 시각은 남성을 포함하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종속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둘째, 여성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하여 남성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그 대가를 누리게 하는 것은 인간사회를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는데 도움된다. 즉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 전체의 발전을 불러오며 발전에 따른 이득은 남성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여성해방을 통해 아무런 진보도 없고 자극도 없는 동반자 관계 대신 대등한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하는 동료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은 보다 친밀해질 수 있으며 서로에게 충실해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남성에게도 큰 기쁨이자 이익이 된다.            

 자기보다 지적으로 떨어지는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평균 이상으로 무엇인가 추구하려고 할 때, 아내가 영원히 무거운 짐과 같은 존재, 심지어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안다. 이런 굴레에 갇혀 있는 사람이 남다르게 고귀한 덕목을 꿈꾼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집단의 왕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퇴보하기 마련이다. 아내를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로 내버려두는 남편이야말로 그런 익숙한 처지에 있는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 <여성의 종속> 제4장 여성의 해방이 남성도 구원한다 中 -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아내를 열등한 존재로 내버려두고 애초에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사와 육아만 담당하게 하는 남성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기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퇴보하고 스스로 굴레에 갇힌 남성이라는 표현을 읽다 보면 앞으로 다룰 루소( Jean-Jacques Rousseau)가 떠오른다. 세탁 하녀와 결혼하여 그녀에게 가사만 전담시켰다. 그녀의 생계는 책임져주었지만 함께 낳은 다섯 아이는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저술활동의 무거운 짐으로 여겼으며 배우자가 있음에도 충족되지 못했던 감정적 교류는 쥘리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체를 소설 속에 만드는 것으로 해소하였다.



반면 누구보다 대등한 부부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잘 알고 있었던 밀은 여성해방을 통해 다른 남성도 이러한 이득을 함께 나누자고 설득한다. 가정에서 함께 사는 동반자가 재능을 키우고 능력을 입증해낼 기회를 받지 못한 채 불행하게 시들어가고 있다면 나머지 구성원도 행복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기적인 남성들이 결혼하자마자 자신과 아내 사이의 체질적 차이점을 다스리기 위해 모든 일을 자기 관점에 맞춰 처리할 수 있는 자의적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로 완전히 이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존재할 수 없다.  
여성이 지금처럼 키워지는 한, 남성과 여성은 일상생활의 취향과 희망을 둘러싸고 진정한 일체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 <여성의 종속> 제4장 여성의 해방이 남성도 구원한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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