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요즘 작법 공부를 위해 안젤라 애커만의 <인간의 130가지 감정표현법>을 읽고 있다. 이 책은 감정에 따른 자세와 몸짓, 표정, 목소리, 행동, 생체반응, 심리반응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때와 반대로 감정이 억압될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어느 감정으로 진전될 것인지, 다른 감정으로 물러날 것인지, 이러한 감정을 지칭하는 유사 단어는 무엇인지 단 4페이지에 모두 담겨있다. 일종의 감정사전 같은 책이다.
사람의 감정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하루에 세 가지 감정만 읽는 중이다. 오늘도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하루의 루틴 하나를 해치우듯 무심히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33. 동정하다 측은히 여기다
상대방을 동정하고 측은히 여기는 감정에 대해 저자들은 '자신이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남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기분'으로 정의하였다. 동정하는 기분을 이렇게 복합적이면서 통찰력 있게 정의하다니. 첫 문장부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얼굴
-미소를 지으려다 애써 참는다
-똑바로 바라보기보다 측면에서 비스듬히 사람을 바라본다
-누군가 다른 사람과 고통 어린 시선을 나눈다
-슬그머니 우월감을 비치는 안색(말려 올라간 입술, 찡그린 콧등 등)
목소리
-판에 박힌 말을 꺼낸다. "잘 헤쳐나가실 거예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잖아요"
-위로하는 대신 그저 귀 기울여주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묻는다
-불행한 사람은 어떻게든 그 불행에 책임이 있다는 논평을 해댄다
-아픔에 심히 공감하는 척하는 어조로 말한다
-어째서 자기가 연루되지 않았는지 변명을 늘어놓으려 한다
몸가짐
-나중히 은밀히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자랑한다
-거짓된 희망을 주려한다. "아마 이 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결국 그 사람은 당신을 용서할 거예요"
-피상적인 위로의 시늉을 해 보이지만 실제로 도움 될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리반응
-도와주고 싶지만 상황이 감당 안돼 죄책감을 가진다
-자신은 그동안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때 나타나는 징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의 불행은 그의 탓이라 여긴다
-연민이 경멸로 뒤바뀐다
더 자세한 묘사와 설명이 담겨있지만 그중에서도 무릎을 치며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다.
하나의 감정을 이렇게 깊이 있게 설명하고 묘사하다니. 어느 한 상황의 한 장면을 칼로 스윽 잘라내서 감정의 내부 단면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 감정의 시간을 쭈욱 늘려 변화하고 다른 감정으로 변이 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을 가졌을 때 보이는 사람들의 양면적인 태도와 몸짓, 대화 내용이 섬칫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인간에 대해, 인간의 감정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동정받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다. 사람이란 온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양가적 감정과 다중성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다. 여러 감정을 동시에 가질 수 있고 하나의 감정에도 다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순수하게 안타까우면서도 나는 이 일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죄책감을 가지게도 되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이러한 연민도 곧 경멸과 피곤함이 되는 순간이 온다.
말로는 위로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주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성의한 위로와 피상적인 공감으론 현실을 바꾸지 못하지만 그 짐을 함께 짊어지기 싫어 알고도 외면하게 되는 그 순간들도 생각했다.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캐릭터를 잘 만들기 위해 글공부로 읽은 책에서 삶과 인간, 관계에 대해 배우고 반성하고 다짐하게 된다. 굳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추천한다. 완독 하는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감정에 대해, 관계에 대해 깊은 생각이 필요한 날 찾아볼 사전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