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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Aug 09. 2022

버튼은 언제, 어떻게 눌릴지 모른다

2022.08.08

사람은 누구나 버튼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언제, 어떻게 눌릴지 본인도 모른다. 버튼이 눌리면 자신에 대한 결정적인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그 버튼은 사람마다 다른 통제 상실로 나타난다. 회피 성향을 불러오고, 분노조절을 못하게 하고, 절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들고, 아주 중요한 기회와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만든다.



버튼이 얼마나 자주 눌리는지, 버튼이 눌리고 나서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지가 결국 삶의 방향과 경로, 서있는 공간을 가른다. 그 버튼은 선천적이면서 동시에 후천적이다. 그래서 서글프다. 누구도 그런 커다란 버튼, 자주 눌리는 버튼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버튼에 취약하게 길러지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천적인 버튼이든,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버튼이든 서른이 넘어서는 더 이상 그 버튼을 변명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버튼이 눌리는지 버튼이 눌린 다음 어떻게 행동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통제력 상실을 경험하는지 반추하고 실험하고 기록해야 한다. 버튼이 자주 눌리지 않도록 눌린 뒤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심리학을 공부하든, 현재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든, 상담을 받든 선택 해야 한다. 버튼을 자꾸 누르는 사람이라면 가족이라도 멀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의 문제라면 그것을 바꿔가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재능과 아이디어가 많은 지인이 한 번 버튼이 눌리면 다 포기하고 사라지곤 했다. 엄청난 기회들을 놓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에너지 관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초반에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모해서 정작 중요한 승부처에서 포기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아까웠다. 그의 재능과 아이디어들이.

 


얼마 전 만난 지인은 가장 가까운 벗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아 힘들어했다. 지인의 지인으로 아는 사이였지만 나 역시 지인의 벗을 알고 있었기에 상황이 안타까웠다. 지인이 가장 힘든 순간마다 그 친구는 가족보다 더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헌신이었다. 그렇기에 관계를 포기하지 말라고 지인을 설득하며 버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버튼이 있는데 언제, 어떻게 눌릴지 아무도 모른다고. 다만 개인적인 사정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에, 버튼이 눌려 고통받고 있을 그 친구를 기다려주자고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 버튼이 눌려 아주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소중한 기회를, 사람을 놓치곤 했다. 앞으로는 버튼이 자주 눌리지 않도록 버튼에 지지 않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끼는 사람이 버튼에 눌렸을 때 손쉽게 관계를 단절하기보다 내 버튼이 눌렸을 때를 생각하며 기다려줄 것이다. 아끼는 사람이 버튼 때문에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면 함께 잡아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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