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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Aug 09. 2022

읽지 말아야 할 속편

2022.08.09

페이지 터너라 불리는 소설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몰입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소설을 페이지 터너라고 부른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일수록, 캐릭터에 몰입하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속편에 대한 요구는 많아진다. 독자와 출판사가 끈기 있게 요구하고 간청한 덕분에 드물게 속편이 출간되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 , 우리 반에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크게 유행하였다. 심지어 교과서 아래 책을 놓거나 책상 서랍에 놓고 몰래 읽기도 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로 돌려보았기 때문에 얼른 읽으라고 채근할 정도였다.


속편의 존재를 알게 된 뒤에는 속편을 읽기 위해 책을 구입하거나 학교 도서관, 구립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고 대기하였다. 전편을 온전히 소화하기도 전에, 여운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속편을 바로 펼쳐 들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나와 친구들의 표정을 누군가 보았다면 아주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속편을 읽고 나서 우리는 너무 허탈해서 점심 급식도 먹는 둥 마는둥했다. 체육시간에도 먼 산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사춘기 소녀들이었기에 소설 속 인물에 과몰입했을지 모른다. 재밌는 소설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그 자리에서 읽어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게걸스럽게 활자를 먹어대던 우리가 빙점의 속편을 읽은 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을 정도였다.



세상에는 읽지 말아야  속편이 존재한다. 시리즈마다 각기 다른 사건을 다루는 탐정물이나 모험물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보통 읽지 말아야  속편이란 앞의 이야기를 쭈욱 잡아당겨 늘린, 이야기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독자들이 책장을 덮고 캐릭터에  빠져 뒷이야기를 신나게 상상했다면 속편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속편은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속편 역시  하나의 장편 소설이다. 갈등과 고난이 있어야  편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우리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 문장을 읽고 우리는 어떤 결말이든 비교적 개운한 마음을 가지고 책장을 덮는다.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속편에서 우리가 사랑한 캐릭터가 전편에서 겨우 찾은 평온에서 벗어나 다시 고통받고 시험에 처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다시 지켜보아야 한다. 갈등과 고난은 마땅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 없는 고통의 전시, 성장 없는 캐릭터, 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캐릭터를 보며 인생의 무상함이나 잔인함을 구태여 체험하고 깨달을 필요는 없다. 차라리 스핀오프처럼 전편의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의 이야기, 배경이 된 공간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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