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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차차 Sep 13. 2022

2천4백만 명 안에 들고 나서야 보이는 것

8일의 기록 2022.09.08

환절기마다 알러지성 비염에 시달렸던 나는 이번에도 비염이려니 했다. 원래 체력이 좋지 않고 두통을 달고 살고 가끔 열도 났으니까, 알레르기가 심하면 근육통도 나타났으니까-하며 으레 겪는 환절기 알러지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유독 심하구나 생각하며 항히스타민제 복용량만 늘렸다.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자 감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일까 코로나와 연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32개월 동안 그토록 경계하고 조심하며 보냈음에도, 일상이 멈췄음에도, 여전히 외출할 때마다 KF94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도 코로나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증상이 나타난 지 4일 차가 되어서야 코로나일 수 있다는 걱정이 몰려왔다. 



증상 발현 4일 차, 첫 번째 양성- 진단키트 자가검사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인 지난주 목요일,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코로나 진단키트를 구입하였다. 아니겠지 하는 마음과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자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자가검사를 실시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진단키트에 2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제야 마스크를 꺼내 쓰고 포스트잇에 검사 결과를 적어 냉장고에 붙였다. 부모님께도 카톡으로 결과를 남기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증상 발현 5일 차, PCR 양성- 코로나 확진 판정

추석 연휴 첫날,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았다. 생각해보니 검사 결과보다 약을 처방받는 것이 더 시급했다. 운영 중인 병원을 찾아갔더니 이미 코로나 의심 환자로 대기실이 가득 찼다. 정확히 1시간을 대기했고 병원에서 진단키트 검사를 해 두 번째 양성 결과를 받았다.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들었다. 내일쯤 나올 거라는 PCR 검사 결과는 쓰러져 자고 있는 동안 전달되었다. 보건소는 환진자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자다가 2번째로 걸려온 전화를 겨우 받아 코로나 확진 판정을 직접 들었다.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삭제된 것 같았다.



증상이 완화된 7일 차

3일 정도 심하게 앓고 나았다는 지인들의 통계는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약을 너무 늦게 복용해서일까 증상이 나타난 지 7일 차가 되어서야 겨우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이번 경험으로 인후통에는 아이스크림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이스크림을 약처럼 꾸준히 먹자 인후통이 완화되었다. 뜨끈뜨끈하던 목 주위도 정상 체온을 찾아갔다.



일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8일 차

8일 차인 오늘, 지난 일주일 중 가장 일상적인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다른 증상은 거의 사라졌고 발열만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두 차례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가 이내 괜찮아졌다. 내일은 진단키트로 다시 한번 자가검사를 해볼 생각이다. 



*발현 8일의 기록

1일 차, 발열과 근육통, 약간의 오한

2일 차, 소강상태, 비염 증상

3일 차, 발열, 기침, 비염, 인후통

4일 차, 극심한 기침, 비염, 인후통 → 진단키트 구입 후 자가검사, 양성

5일 차, PCR 검사 → 병원에서 진단키트 검사, 양성 → 약 먹고 자는 것만 반복, 극심한 인후통, 기침, 발열

6일 차, 인후통 완화(아이스크림 섭취 효과), 약한 기침, 비염 증상 동반, 어지럼증, 두통, 발열

7일 차, 발열, 간헐적인 기침

8일 차, 간헐적인 발열, 일상의 컨디션으로 회복



2천4백만 명 안에 들고 나서야 보이는 것

누적 확진자 수가 천만이 넘었을 때, 우리나라 인구 5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걸려봤다니-하고 놀랐고 그다음에는 굳이 확진자 수를 찾아보지 않았다. 걱정스레 1일 확진자 수를 확인하던 때가 벌써 아득했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며 가족과 친구들이 연달아 코로나 확진 소식을 전해왔을 때는 혹시 모를 내 순서(?)를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증상이 발현돼도 코로나를 떠올리지 못할 때 나를 찾아왔다. 


누적 확진자 수를 확인해보니 9월 12일 저녁 10시 30분 기준, 24,041,825명이다. 중복 케이스도 고려해야겠지만 2천4백만 명, 인구의 반 정도가 코로나를 경험한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코로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코로나 관련 글을 읽는 것도 관련 뉴스를 듣는 것도 다들 지치다 못해 질려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매일 확진자는 발생하고 있었다. 


뉴스가 아닌 지인의 일, 가족의 일, 내 일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32개월 동안 검사소를 운영하고 있는 관계자와 의료인이 보였다. 추석 연휴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병원의 대기실과 복도를 꽉 채운 확진자들과 가족들도 보였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누군가가 버티며 지켜내고 있는 일상이 내가 아프고 나서야, 그제서야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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