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15
어제부터 글이 안 써졌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서인가. 소설도, 드라마도 그 어떤 스토리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번 주까지 마감할 원고는 전혀 문학적인 글이 아니다. 오랜만에 사회과학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마감이 생기다 보니 즐겁게 쓰던 글도 쓰기 싫어졌다.
글감도 있고 트리트먼트까지 나온 글들이 쌓여있는데 쓰기 싫었다. 사실 글만 쓰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하기 싫어졌다. 인풋이라도 늘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또 활자로, 영상으로 도망쳤다. 쪼개 읽던 책들을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결국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사실 글이 안 써질 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던 글을 그만두고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다. 사회과학 글 쓰기든 스토리든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딴짓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흘러넘친다. 이때 새롭게 떠오르는 캐릭터, 문장, 배경, 스토리라인이라도 타이핑해야 한다. 그래야 쓰는 것에서 도망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새로운 글이라도 쓰자.
물론 수많은 작법서는 일단 쓰고 있는 글을 끝내라고 가르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글을 완성하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아플 정도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도 흘려보내지 말고 녹음이라도 하고 메모해서 기록해야 한다. 무엇보다 타이핑하는 행위, 손에 펜을 쥐고 움직이는 행위 자체를 잊지 않기 위해 마중물을 흘려보내는 심정으로 써 내려가야 할 때도 있다.
첫 페이지 혹은 커서가 끝난 부분부터 이어 쓸 필요는 없다. 생각나는 곳부터 써 내려가고 목차를 새로 구성해가도 된다. 안 나오는 부분을 붙잡고 하얗게 텅 비어 커서만 깜빡이는 곳을 바라보다 보면 더 무서워진다. 다시 돌아와서 채워나가더라도 일단 쓰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하기 싫을 때, 나는 지인들에게 세 개의 단어를 말하라고 한다. 세 단어가 반드시 글에 등장하도록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때는 제한 시간을 두고 작성하면 더 효과적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 떠올린 세 단어가 아니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던져주는 단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단어로는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타인의 단어로 도망칠 때, 새로운 글이 나타난다.
세 단어는 소재라기보다 일종의 소품이다. 글에 등장하는 소품.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의 배경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캐릭터가 이동하는 장면에서 스쳐 지나간 간판에 쓰여있는 가게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청년 인문 실험 <치유글쓰기 공작소>를 진행할 때, 카페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떠오르는 세 단어를 부탁해 '달걀', '초록색', '사다리'를 받아 글을 썼다. 20분 안에 글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떠오르지 않네, 글 쓰기 싫네 하며 투덜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아래에 붙여 넣은 글이 바로 그 글이다. 매우 민망하지만 퇴고도 수정도 없이 그 당시 글 그대로 가져왔다.
또 그 꿈이었다. 초록색이 끝없이 펼쳐진 그 들판, 나는 또 그곳을 헤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고요하게 바람 소리와 들풀이 숙였다 일어나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서서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흘리는 눈물 같았다.
“오 대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이 부장이 지나가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갔다. 오전 내내 밀린 일을 처리하고 겨우 짬을 내 옥상에 올라왔는데.. 이렇게 또 마주치고 말았다. 이 부장이 깨버린 그 상념으로 다시 들어갔다. 왜 요즘 이 꿈만 꾸는지,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서글픈 것인지...
삼춘기, 삼십 대에 사춘기를 다시 겪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기준이가 보고 싶어 진다. 나의 사춘기를 같이 보냈던 그 친구,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소식조차 없지만, 그때는 기준이만 있으면 입시도, 엄마 아빠의 싸움도 다 잊을 수 있었다.
“거기 사다리 좀 잡아줘”
기준은 아래를 내려 보지 않고 소리쳤다. 다들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 내부를 달걀로 꾸미느라 정신없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뛰어가 사다리를 붙잡았다. 기준이는 현수막을 천장에 묶고 그제야 사다리를 내려왔다.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4월의 얼굴처럼 그렇게 날 보고 웃었다.
“부활절 준비를 청년부가 담당하니 재밌다. 어! 처음 보는 얼굴이네, 난 서기준! 할머니 댁이 이 근처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댁 오면 여기 다녔거든.. 오랜만에 다시 온 건데, 너는 처음 보네. 나 당분간 여기서 학교 다닐 거야...”
기준과는 그렇게 부활절에 만났다. 기준이는 우리가 부활절에 처음 만났으니, 나중에 이스터 섬에 함께 가자고 했다.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초원을 걷다 보면 바다를 보며 서있는 모아이 석상을 볼 수 있을 거라 했다. 기준이는 본인의 말대로 당분간만 나와 같은 학교를 다렸다.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 급하게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급하게 전학을 가버렸다.
왜 요즘 기준이와 이스터섬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탈출하듯 집을 나오고 싶어 기준이 떠나고 난 뒤, 죽도록 공부만 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갈 수 있다. 오직 그 생각만 가지고 그렇게 나의 사춘기를 나 스스로 닫아버렸다.
그 이후는 남들처럼 살았다. 서울로 대학을 오고 졸업 후 취업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었다. 대학 때 서울 오고 기준이를 잠깐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그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뒤로는 사는데 너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였다.
엄마 아빠에게 각자 용돈을 보내드리고 서울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그런데,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지낼 것 같았다. 숨이 자주 막히고, 늘 그 꿈 뒤에는 땀과 눈물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났다. 살려면 심리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약보다는 여행을 좀 다녀오는 게 어때요?”
그렇게 정신과 의사의 처방대로 이스터섬까지 왔다. 저 멀리 기준이를 닮은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세 단어 쓰기로 단문을 쓴 것을 묶어 하나의 장편을 만든 적이 있다. 세 단어 글쓰기는 글로 도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이번 주 일요일 마감인 글은 스토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브런치도 쓰기 싫어 하얀 화면만 한참 동안 바라봤다. 결국 나는 브런치에 글 쓰는 것으로, 또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