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윤미 Dec 24. 2021

오늘의 구름




   아이의 발은 어른의 발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의 발에 맞는 신발을, 이제 어린이 신발 가게에서는 찾을 수 없다. 오늘 처음으로 어른 운동화가 파는 가게에 갔다. 아이의 발을 보더니, 직원이 말한다. “크면 아마 구두가 잘 어울릴 거예요. 꼭 그렇게 생긴 발이네요.” 길쭉하고 발등에 살이 없어서 그렇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신발 가게 직원의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본다. 구두가 잘 어울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여자 어른을 그릴 때면 꼭 뾰족구두를 신은 모습을 그리곤 했다. 유치원 선생님은 편한 슬리퍼를 신고, 아이의 할머니는 발의 모양에 잘 맞는 투박한 단화를 신는다. 나는 임신하고 나서부터 2cm가 넘는 굽의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다. 여자 어른의 가장 아름답고 전형적인 모습은 뾰족구두를 신은 모습일까. 아이 주변에 뾰족구두를 신는 어른은 없는데, 아이는 어떻게 알고 그리는 걸까. 내 아이뿐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본 아이들의 그림에는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뾰족구두는 멋스러운 옷에 어울리고, 머리 모양이며 손에 든 가방까지 하나같이 잘 어울려야 할 텐데, 그런 삶이란 잘 정돈된 삶일까. 옷장 문을 열어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오늘의 옷을 고르고, 과하지 않은 액세서리와 가방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뾰족구두를 신어 자신감을 한층 드높이는 일. 옷장과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일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커트 머리를 해야만 했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그땐, 당연히 남자아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아야만 했고, 치마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 짓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교복을 입으면서 단발머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남은 건 5cm를 넘지 않는 낮은 자존감이다. 대학교 때도 화장을 하지 않았고, 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내가 신어본 가장 높은 구두의 굽은 5cm이고, 그 시절은 대학원을 다니고 조교를 했던 그때뿐이었다. 아름다운 원피스를 입고, 옷에 맞는 목걸이를 탁 탁 걸치는 여자들을 보면 이상한 동경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온다. 내가 나를 남에게 보여주는 방식은 시밖에 없는 것이다. 내 아이들은 치마와 바지의 경계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여자 어른과 남자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의 편견에서 자유로우며, 살아온 곳을 떠나는 것과 머물렀던 곳에서 계속 머무르는 삶의 방식에서 두려움이 없었으면 한다. 저녁 무렵, 누군가 뾰족구두를 신고 걸을 때 반짝이는 별 하나가 보도블록에 또각또각 소리를 선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