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2
나를 포함해 열 명이 전부였다. 그 아이들과 6년을 함께 보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만 새로 오셨고 우리들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자랐다. 그들의 동생과 언니와 형 누나들과 우리는 모두 알고 지냈다. 운동회가 열리면 50명이 조금 넘는 전교생들이 발에 끈을 묶고 뛰고 이어달리기를 했으며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췄다. 일렬로 서서 멜로디언으로 동요를 연주했고 각자의 부모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박을 터뜨렸다. 소풍이나 마을 밖으로 나가는 행사에는 부모들까지 같이 가는 것이 당연했고 우리는 몇 날 며칠 연습한 연극과 노래를 선보였다.
열 명의 아이들로 시작해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 연결되는 이 끈을 붙잡고 나는 성장했다. 그중 다부진 아이가 집이 있는 곳을 동쪽 서쪽으로 나눠 편 가르기를 하기도 했으며 소심하고 민감한 재주가 없는 아이는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 때 이쪽저쪽을 다 경험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우리는 마을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우리들이 있는 이 작은 세계에서 모든 일은 벌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학교 때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인근 도시로 나갔다. 전교생이 50명 남짓 되는 학교에서 자란 내가 한 반에 50명이 넘는 그들 속에서 부딪치며 부대끼며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피아노를 기본으로 배우고 유치원을 나온 그들은 작은 마을을 이제 갓 벗어난, 촌뜨기 티를 벗지 못한 우리를 참 신기하게 여겼다. 신기해하면서 조금 얕잡아 보기도 했던가. 분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일부러 물어보지 않는 한 나는 입다물고 있었다. 그래야 그들 속에 섞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치를 뚫고 나온 열 명의 아이들은 한동안 드세고 야무졌던 도시의 아이들 틈에서 조금 피곤했고 조금 고독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에서만 우리는 명랑했고 손바닥 안에 새겨 넣은 규칙은 우리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손바닥 규칙을 어기며 부수며 변형시키며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이 돼야 했을 것이다.
아홉 명의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지낸 지 오래됐다.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밤.
참, 마을에 별빛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