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 하는 낮과 밤

당신 다음엔 무엇 5

by 강윤미
식물과 함께 하는 낮과 밤.jpg 그림 metaphor


자취하던 시절, 작은 화분 몇 개를 사다가 책상이나 창가 위에 두곤 했다. 앉은뱅이책상과 학교 앞 중고가전제품 가게에서 3만 원에 산 텔레비전과 누런 얼룩이 새하얗던 처음을 잊게 만드는 작은 냉장고, 4단짜리 책꽂이 하나. 단출한 방에 화분은 작고 연약한 기쁨을 주는 사물이었다. 찾아올 사람 없고 먹을 반찬이 늘 부족하고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하던 내 작은 방. 적막감이 무서워서 틀어놓았던 텔레비전.


화분 몇 개가 위안이고 쉼이었다.


그것들을, 그 기분을 잊고 참 오래 지냈다. 두 딸을 키우는 동안 식물 하나 집안에 들여놓을 여유가 없었다. 책과 장난감이 그 자리를 잔뜩 차지해 있었으니까.


몇 년 전, 결혼해서 십 년을 살았던 작은 신혼집에서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작은아이는 아직 손이 많이 가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명민한 큰아이 덕에 다른 생각, 다른 가능성을 훔칠 수 있게 되었다.


신혼집은 늘 어두워서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는데, 이사 온 집은 햇살이 아침부터 정오까지 거실과 방을 다 밝히고도 남을 만큼 깊숙하게 들어와 식물 생각이 절로 났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친정엄마의 지인들 몇 분이 마음을 모아 섬에서 보내 온 벵갈고무나무. 작은 신혼집에 큰 벵갈고무나무를 둘 데가 없어서 베란다 한쪽에 두었는데, 돌이었던 아이가 걷고 뛰어다니고 말을 배우고 유치원에 가는 동안 나무도 노란 잎을 떨어뜨리고 새 잎사귀를 몸에서 끊임없이 뱉어내며 참 잘 자라줬다.


이곳으로 올 때 데리고 온 벵갈고무나무를 거실 한쪽에 두고 햇살이 나뭇잎들을 비추다 다시 거둬들이는 시간과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한다. 그리고 이 햇살들의 평수만큼 더 많은 식물을 키우고 싶어 온라인으로 아이비, 틸란드시아, 트리안, 홀리페페, 스킨답서스, 유칼립투스 등을 주문했다.


분갈이하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고 흙과 마사토, 모종삽을 사서 아이들과 신문지 위에 앉아 화분에 옮겨 심고 아이가 쓴 이름표를 꽂는다. 청소할 때도 장난감 정리를 하면서도 겉흙의 상태와 잎의 상태를 들여다본다. 물주는 시기에 대해 고민하고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훌쩍 자란 식물은 더 큰 집으로 옮겨준다. 무엇보다 강 같은 음악이 늘 거실을 감싸고 흐르게 한다. 나도 듣고, 아이들도 듣고, 아마 그들도 그럴 테니까.


처음에 그것들은 짙은 초록이었는데 문득 눈여겨보면 아주 작은 연둣빛의 잎을 봉긋 내밀고 있다. 자주 들여다보지만 분명한 건 내가 모르는 시간에 잎은 바깥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느끼는 시간과 내가 체감하는 시간의 질감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 차이 덕분에 나는 그들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다. 아래로 자라는 것들은 아래로 흘러가면서 잎을 키우고, 위로 자라는 것들은 넓이와 공중을 안으며 자유로워진다. 나는 초록의 채도와 밀도를 처음 배운다.


이 집의 불이 다 꺼지면 식물들도 잠을 잘까? 그들끼리의 수다가 다음 날 작은 잎으로 돋아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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