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7
나에겐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 같은 고모가 있다. 언니가 없고 속마음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나는 같은 마을에 있는 고모의 방에 자주 갔다. 갓 스무 살이 넘은 고모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일하고 돌아오는 고모를, 고모의 빈방에서 자주 기다렸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고모가 시내 만화방에서 빌려 온 순정 만화책을 그때 처음 읽었다. 두근대는 마음 때문에 화끈거렸고 다음에 빌려올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빛과 소금, 유재하, 조지 윈스턴 December 음반이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Chi Mai ’같은 음악을 그 방에서 처음 들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꺼내 괜히 책장을 넘겨보기도 했으며 서랍을 열어 고모의 옷을 한 번씩 내 몸에 대보기도 했다.
이따금 불 꺼진 방에서 익숙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토요 명화’를 고모 옆에 누워 보기도 했다. 고모와 자는 날이면 내 몸에다 발을 걸치고 꽉 껴안고 자는 고모의 습관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수학시험을 망친 날엔 고모에게 달려가 울기도 했고, 백일장에서 상을 타게 되면 제일 먼저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모는 시내에 데려가 옷을 사주기도 했고 지금은 고모부가 된 그때의 남자친구를 내게 제일 먼저 소개해줬다. 내가 부모님 몰래 대학 원서를 내러 그곳으로 가려고 했을 때도 선뜻 비행기표를 해줬었다.
글을 쓰면서 고모를 떠올리니 고모에게 참 고마운 일이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러 섬에서 온 고모의 눈가가 젖었다는 걸 나는 안다.
섬을 떠나온 나는 혼자 살아야 했고 강해져야 했으므로 고모에게 기대지 않았다. 고모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내가 쳐 놓은 커튼 밖으로 나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비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좁고 길었던 그 방에 있던 고모의 이십 대와 나의 십 대. 그 방에서 다시 아이처럼 춤추고 소리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