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11
‘구덕’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돌하르방, 오름, 야자수, 흑돼지……. 그것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유명세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이것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고, 익숙해서 그냥 삶으로 남은 것. 삶인 것.
박물관에 가면 대나무로 엮어진 바구니 형태의 이것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 쓰는 것은 좀 다른 모양인데, 아기의 요람 혹은 일종의 흔들 침대라고 말하면 될까? 아이가 태어나 스스로 밖으로 탈출하려 할 때까지 이 작은 세상에 누워 잠을 자고 젖을 빨고 옹알이를 한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작고 소중한 생은 기꺼이 제 몸을 받아 주는 아름다운 공간에 잠시 세 들어 산다. 동생이 태어나면 동생에게 물려주고 옆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옆집 아이에게 건너간다.
단단한 쇠붙이로 프레임이 만들어진 탓에 부서질 일 없고 닳을 일이 없어서 모빌을 보다 잠든 아이가 여자 어른이 돼서 다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세월을 바짝 견디고 버틴다. 아기가 만난 첫 세상인 그것은 후한 인심으로 엄마가 된 아이의 아기를 두 손 뻗어 반긴다.
나의 작은 몸도 그곳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깨다 울기도 했을 것이고 뒤집기를 시작했을 땐 구덕 밑 세상이 궁금해 뒤집어 보려고 당찬 포부의 발길질도 했을 것이다. 내 어머니, 혹은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밭일을 나갈 때 구덕에 아이를 눕히고 발 하나를 구덕의 옆구리에 걸치고 흔들어주며 일을 했다고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과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던 섬 여자들의 삶이 네모난 상자 속에 담겨 있다.
아이는 그곳에 홀로 누워 세상을 익히느라 고독하고 엄마는 아기를 재우며 여자의 삶을 반추하느라 밤이 더 밤같이 느껴졌을 숱한 벽지 위의 어둠. 배고파 울고 졸려서 울고 아파서 울었을 아기와 그 작은 것의 더 작은 아이에게 우주같이 큰 끼니를 먹이고 자장가를 불러주던 몸도 마음도 어여뻤던 그녀들.
첫 아이를 출산한 딸을 조리해주러 오신 어머니께선 밤낮으로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구덕만 한 것은 없다며 섬에 계신 아버지께 보낼 것을 급하게 요청하셨다.
며칠 후 택배 아저씨가 벨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가니 한 쪽 손에 그것을 든 아저씨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단단하고 괴상하게 생긴 쇠붙이를 아무런 포장 없이 보낸 털털한 아버지 탓에 몸매와 생김새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 아저씨는 내게 물건을 건네면서 한참을 갸우뚱거린다.
비로소 묻는다.
“그런데, 대체 이건 뭐에 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