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22
단어 하나를 들으면 그것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아이는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 뜻을 물어온다.
‘건방지다’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더니 ‘건방지다’는 아무 때나 건방지다!
건방진 책상, 건방진 고양이, 건방진 수저, 건방진 냉장고, 건방진 날씨, 건방진 엄마…….
‘다정하다’의 의미를 알려주었더니 ‘다정하다’는 어느 때고 다정해서 난리다.
다정한 피아노, 다정한 소파, 다정한 블루베리, 다정한 블록, 다정한 코트, 다정한 언니…….
‘귀중하다’의 의미를 속삭였고 그리하여 ‘귀중하다’는 뜬금없이 귀중해진다.
귀중한 스티커, 귀중한 치즈 머핀, 귀중한 인형, 귀중한 화분, 귀중한 연필깍이.
단어를 넣고 오물오물 씹는 아이의 입에서 소화되고 남은 아이의 기분이 고스란히 만져진다. 아이는 웃고 짜증 내고 떠들고 토라진다. 그러려고 아이가 된 거다.
오늘은 어떤 색깔을 간직한 저녁이 내가 쓴 단어를 물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