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닿다

당신 다음엔 무엇 29

by 강윤미
봄에게 닿다.jpg 그림 metaphor





대학 1학년 때 들어간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는 내가 시를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진중한 성격의 그 선배와 나는 소설책이나 시집,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꿈을 나지막이 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느 날, 선배가 동아리 사람들 몇 명에게 자신의 고향에 같이 가자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걷기 여행을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어느 토요일 오전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선배를 포함한 동아리 사람 몇 명과 선배의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섬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그즈음 갔던 모든 곳은 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터미널에서부터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선배의 고향은 다시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선배에게도 익숙한 곳은 아니었다. 우리는 작은 읍내를 나와 자동차와 건물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그런 곳으로 빠졌던 것인지, 처음부터 그런 곳을 원했던 것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돌아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였고 옆에는 지나가는 차도 뜸한, 아득하게 산과 물이 우거진 곳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근처 작은 절을 지나가게 되었다. 지나칠 수 없어서 절에 들어갔다. 절 마당을 둘러보고 절 뒤편에 있는 절벽에도 올라갔다. 가파르게 나 있는 그 작은 절벽을 오를 때는 조금 두렵기도 했으나 꼭 오르고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일었다. 절벽에 올라서서 산 능선을 눈에 담았다. 부모의 품을 떠난 내가 처음 마주한 큰 풍경이었다.


절에서 내려와 저녁이 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어느 작은 마을로 갔고 우리는 정말 돈이 없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빌라 복도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지금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불편함을 그땐 즐거운 낭만이라 여겼다.


아침에 다시 걷고 걸어 터미널로 돌아갔다. 참 오래 걸어서 나는 나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뒤늦게 도착한 편지 같다. 열지 못한 편지 안에 아직 스무 살의 봄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토토와 알프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