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30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집 근처에는 카페가 많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는 카페는 많지 않다. 일단 테이크아웃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앉아서 글을 쓸 만한 탁자와 의자가 마땅하지 않다. 그리고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있는 카페보다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카페가 좋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소심한 성격의 나는 웃음 뒤의 장착한 그들의 속마음을 자꾸 신경 쓰게 된다.
이래저래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다섯 군데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 카페는 집에서 가까워서 조금만 걸으면 된다. 또한 의자에 앉으면 머리까지 가려지는 가림막이 있어서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화장실이 카페 내부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두 번째 카페는 커피값이 저렴해서 제일 큰 사이즈의 커피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의 보통 사이즈 커피보다도 저렴하다. 그러나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에 주로 이용한다.
세 번째 카페는 혼자 앉을 수 있는 가림막이 있는 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커트 머리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해서 좋다. 아르바이트생이 여러 명이 있는데, 파트 타임으로 하는지라 커트 머리 아르바이트생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커트 머리 아르바이트생에게 “아메리카노 큰 사이즈 주세요”라고 하면 그녀는 “진하게 드시죠?”라고 내가 할 말을 그곳에 남겨두고 온 것처럼 대신해준다. 그 작은 관심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다. 커피를 주문하는 몇 분, 커피잔을 놓고 가는 몇 분이 그녀와 나의 시선이 맞닿는 풍경의 전부지만 그녀가 없을 때는 조금 서운해지기까지 한다. 나는 어릴 때 커트 머리였기 때문에 커트 머리 여자를 보면 조금 오래 마음이 머문다.
네 번째 카페는 동네에 있는 카페 중에 가장 크다. 그래서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을 확률이 높고, 많이 앉아 있다 하더라도 의자 간 거리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덜 신경 쓰인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건물 뒤편에 난 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구석 자리다. 그 자리에 앉아 위를 쳐다보면 스피커가 천장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다른 카페에는 그날그날 흘러나오는 노래가 달라서 취향이 아닐 때가 많고 사람들의 말소리를 피해 이어폰을 꼭 끼고 글을 쓰지만, 이곳의 스피커에서는 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와 이어폰을 빼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바로 위에 스피커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큰 소리로 흘러나오지만 과하지 않은 음량의 피아노 연주여서 그 분위기에 빠져들면서 책을 읽기 좋다. 그러나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여서 저녁에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고, 내가 좋아하는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을 확률도 많기 때문에 주로 아침에 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9시 30분쯤 가면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혼자 피아노 연주를 독차지할 수 있다. 참, 나뭇결이 느껴지는 탁자의 느낌도 좋다.
다섯 번째 카페는 프랜차이즈 카페지만 비교적 커피값이 저렴한 편이고 앱을 설치하면 주문과 동시에 동그란 카페 로고가 도장처럼 찍혀서 12번 마시면 한 잔의 아메리카노 쿠폰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카페에 자주 가는 나 같은 사람에겐 이런 혜택은 정말 큰 선물이다. 칭찬스티커를 모아 평소 사고 싶던 물건을 사러 가는 엄마의 손을 꼭 쥔 아이처럼 카페 로고를 모으는 기쁨은 나로 하여금 기꺼이 두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게 한다. 이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따로 있으니 커피를 만드는 주방 뒤쪽 구석 자리다. 벽을 보고 앉아 있으면 옆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혼자만의 작업실에 있는 듯 안정감이 느껴진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도 유난히 큰 말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내 귀에 콕콕 박혀 집중을 못 할 때가 간혹 있다. 또한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놓은 곳도 있어서 카디건 하나를 가방에 챙겨 넣고 다닌다. 가려고 했던 카페의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으면 돌아서서 다른 카페의 내가 좋아하는 자리로 간다. 유난히 덥거나 유난히 추운 여름과 겨울의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의자에 앉지 못할 때가 많다.
뒷문으로 내가 좋아하는 자리의 흐름을 살피는 일. 오늘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아이 엄마임을 잊고 내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카페에는 모르는 사람뿐이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좋다. 그 ‘모름’ 속에서 나만 아는 이야기를 혼자 피식거리기도 하고 감성에 젖기도 하면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커피는 이 모든 사정을 다 알아버려서 싫증 난 듯 금방 식는다. 식지 않게 자주 마시고 자주 쓰다듬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