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43
아이들이 저녁마다 유튜브로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구닥다리’라는 대사가 나오자, 여덟 살 작은 딸이 묻는다. ‘구닥다리’의 뜻을 애니메이션의 장면에 빗대어 말해주니 그다음 날부터 아이는 내게 ‘구닥다리 엄마’라는 별명을 선물한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상황과 뜻에 상관없이 입에 갖다 붙인다는 것을 깜빡했다. 낯선 말을 몸에 익히는 아이만의 방식인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이미 나는 ‘구닥다리 엄마’가 된 뒤였다.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인형 놀이에 돌입하려는 아이. 칫솔로 구석구석 이를 닦고 놀 것을 종용하는 내게, 아이는 말한다.
“아휴, 구닥다리 엄마!”
물건을 다 쓴 뒤 제자리에 정리하라거나 밥을 먹고 난 뒤 설거지통에 그릇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면, 딸은 소리 높여 외친다.
“아휴! 구닥다리 엄마!”
학교에서 내준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놀자고 슬슬 달래면 아이의 작은 입에선 어김없이 튀어 나온다.
“정말 구닥다리 엄마라니까!”
나는 잠자코 있는다. 휘황찬란하게 머릿속에서 단어를 굴리는 아이를 당할 재간이 없다. 가끔은 뜻에 들어맞을 때도 있다. 내가 “이 옷에는 이 신발이 어울릴 것 같아. 양말은 이게 낫고, 머리띠는 이것이 훨씬 잘 어울릴 거야.” 하면, 아이는 “아휴, 엄만 정말 구닥다리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고른 양말을 신고 머리띠를 하고,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간다.
몇 시간 후,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나를 향해 아이가 걸어온다. 아이가 고른 양말과 신발, 머리띠가 그럴싸하다.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사고방식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조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정말 ‘구닥다리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구닥다리 엄마’이기 전에 ‘구닥다리 대학생이고 아가씨’이기도 했다. 한참 유행했던 미니홈피를 나는 만들지 않았었다. 내가 정말 아끼는 것들은 내밀한 채로 남겨 두려고 하는 조금은 폐쇄적인 성격 탓이다. 자취를 오래 했지만 자취방에 초대해본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도 운영하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신혼 때부터 십 년을 살았던 아파트는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리고 들어가야 했다. 밖으로 나올 땐 다시 구멍에 열쇠를 넣어 잠그고 가방에 넣는다. 열쇠가 없으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열쇠가 가방 속에 잘 있는지 신경 써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집 두 집 도어락으로 바꿔갔다. 결국 우리가 살았던 복도식 아파트의 14층에서 우리 집만 열쇠 구멍을 여전히 갖고 있는 집이 되었다. 남편은 “우리도 바꿀까?” 했고, 나는 “시인인데 열쇠로 열고 들어가야 하지 않아?” 했다.
시인이라고 오래되고 향수에 젖은 물건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라고 얼리 어답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란 사람은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시를 써서 열쇠를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으로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괜한 돈을 쓰기 싫었고, 현재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아서다. 남편은 열쇠와 시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을 리 없고, 인과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는 내 대답에 순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우리는 열쇠를 쓰자.” 시 쓰는 남편답다. 어떤 말이든 내 의견을 존중하는 내 남편답다.
뒤늦게 스마트폰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나는 남편이 없는 평일에 큰아이의 바이올린 레슨을 하러 가는 날이면 전화를 걸어 콜택시를 부른다. 치킨이나 보쌈을 주문할 때 매장에 직접 전화를 건다.
내가 필요 없다고, 지금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편리하고 간단한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속한 나약한 인간일 뿐이므로, 조금 늦더라도 대세를 따라야 한다. 결국엔 기계와 새로운 형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삐삐가 그립고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를 갖고 다니며 음악을 들었던 시대가 그립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원하는 방식의 대량 생산의 시대로 나 또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스마트폰으로 날씨와 미세먼지 농도를 검색하고, 다른 집의 인테리어를 실컷 구경하며 오늘은 얼마나 걸었는지 체크한다. 3년 전에 이사 온 아파트는 처음부터 열쇠 구멍이 없는 신식 아파트여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다.
편리한 것은 역시 좋다. 다만 편리한 것과 익숙한 방식 사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고집이 세다. 내가 절실히 원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으니 말이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에게 깊은 정을 주지 못한 탓에 오랜 친구들이 그립고 오랜 친구들이 곁에 없어서 나는 외롭다. 맑고 높은 가을의 구름을 보면 같이 시를 썼던 대학 후배가 다른 도시의 하늘을 보며 잘살고 있는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도시에서 혼자 돈을 벌고 있을 고향 친구가 떠오른다.
<하늘을 보니 네가 생각나. 잘 지내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엔 일하고 돌아온 네가 혼자 고단한 잠을 자고 있을 것 같아 걱정돼. 널 떠올리면 늘 내가 외로워져. 우리 둘 다 섬을 떠나왔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어린아이들 곁에 늘 있어야 해서 네가 있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구나. 기차 한번, 버스 한번 타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갈 엄두가 안 나. 늘 너의 얼굴이 그리워. 8년 전 네가 일하던 서울의 마트에서, 기차 타러 가기 전에 잠깐 본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 되어 버렸어. 우린 여덟 살에 만나 스무 살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익숙한 것을 떠나보내는 일 같아. 내가 시를 쓰겠다고 육지로 간다고 했을 때 너는 네가 일하던 꽃집에 딸린 작은 방에서 울었었지. 내가 떠날 때 가장 슬프게 울어준 유일한 사람이 너였어. 난 시인이 되고 싶어 두려움도 잊었었는데 넌 그때 이미 외로움에 충만했었나 봐. 네가 일하던 치킨집, 꽃집, 마트, 골프장……. 내가 모르는 그 밖의 너의 일들. 네가 밥을 먹고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그 많은 장소와 지역들.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키워왔을 너의 고독. 나의 고독.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뻥 하고 사라져버릴 것들.>
긴 문자를 보내고 싶지만 참는다. 견딘다. 후배에게 안부를 묻는 대신 하늘의 구름을 한 번 더 올려다본다.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만 전화하지 않는다.
익숙한 지금의 외로움이 한꺼번에 무너져 후배에게 후회할 말들을 해버릴 것 같고, 친구의 말은 들어주지 못하고 내 말만 쏟아버릴 것 같아 마음에 문자한다. 1년에 한 번 친구의 생일날 축하한다고 보낸다. 실은 축하한다는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는 구닥다리이고 서툴고 촌스러워서 세련되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