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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 May 16. 2023

우리 아들의 아빠가 참 좋습니다.

#3. 자폐 아이의 좋은 아빠가 되기까지

"나는 목욕을 못 시킬 거 같아"


아들이 태어나고 5살이 될 때까지,

남편이 육아를 대하는 방식은 늘 저런 식이었다.


도와주긴 하는데, 내 책임은 아닌 느낌.


아이가 뒤쳐진다고 느낀 것도,

장애 통합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것도,

이것 저것 치료를 알아 보는 것도

엄마인 나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엄마의 계획에 방해되지 않게 응원에 집중하면서

한발 짝 뒤로 물러서 있는 듯한 남편의 모습에

서러운 울분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이

적지 않았다.




"아빠로서의 책임감은 없어?"


술 한잔 기울이고 취기가 어린 얼굴로 집에 돌아온 남편은

친한 후배의 뼈때리는 조언 몇 마디에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아들과 둘만 산책을 한 적은 있는지,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준 적은 있는지,

아빠로서의 책임감은 있는 건지,

쏟아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눈치였다.


엄마가 노력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아들은 자랄 수록 점점 더 자폐라는 퍼즐에 맞춰지고 있었다.


엄마가 무엇을 더 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 아들의 아빠가 각성을 했다.



"내가 육아휴직 할께"


엄마의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었다.

6살이 된 아들은 정서적으로 비교적 안정은 되었지만,

아직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남편은 잘나가는 외국계 기업 부장님의 커리어를 뒤로한 채,

긴 고민 없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은 매우 알차게 구성되었다.


아들의 밥을 짓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아들의 치료를 위해 온갖 외국사례를 공부했고,

매일매일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쳤고,

비가오면 비가 오는대로 비에 함께 젖으며 놀아주었다.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7살이 된 아들은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코 자자"


이제 아들은 아빠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는다.

아빠가 멀리서 걸어오기만 해도 꺄르르 웃음부터 먼저 나온다.


오늘은 아빠가 어떤 놀이를 해줄 지

한 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아빠를 기다린다.


직장으로 복귀하고, 훨씬 더 바빠진 아빠이지만,

아이 음식을 위한 재료를 미리 주문하고,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저녁을 차려주며,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맨손 체조를 하고,

일요일마다 목욕탕 코스를 빼먹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감사할 줄 아는 좋은 아빠가 되었다.


나는

우리 아들의 아빠가 참 좋다.



매일 아침 맨손 체조를 함께하는 우리 아들과 그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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