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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3.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7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마지막 친절의 비결을 알아보아야겠네요.

- 불필요한 검사를 원하는 분들은 받게 한다. 반대로 검사나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분들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환자분들의 뜻에 맡긴다.

이것은 조금 민감한 문제입니다. 어떤 것들이 필요한 검사이고 어떤 것들이 불필요한 검사인지에 대한 기준은 칼로 무 자르듯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검사의 정확도와 필요성을 결정하는 방법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통용되는 것들이 있기는 합니다. (이것들을 말씀드리자면 이야기가 삼천포를 지나 현해탄을 건너 일본땅에 다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너무 엄격하게 들이대면 의사의 자율성을 제한하여 오히려 오진의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환자분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의사가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때그때 결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지요. 다만 그 근거라는 것이 다른 일반적인 의사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학문적, 논리적이어야 하겠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너무 허무맹랑한 이유로 검사나 치료를 한다면 그것은 과잉 진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 한의신문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과잉 진료라는 것이 요즘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분들의 요구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즉,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검사나 치료를 강력히 요구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인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실손의료보험(실비보험)에 가입한 분들이 증가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손의료보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비싼 의료비를 지출하더라도 보험에서 그것을 환급받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의료비 지출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권유하는 일부 의사들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서 그런 의료 행위를 스스로 강력히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제 외래에서 고가의 CT, MRI 검사 등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도 자신의 상태가 궁금하니 찍어보자고 우기는 분들이 종종 계시다는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병원의 수익을 늘이기 위해 의사가 검사를 종용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이것은 상황이 거꾸로 된 것이지요. 의사가 환자의 검사를 해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이상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의사와 환자 간의 '훈훈한 모습' 정도로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환자분의 고집이 결국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하거든요. "내가 내 돈 내고 하겠다는데 왜 당신이 안 해 준다는 거야?"라고 버티시면 그것을 설득하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사로서도 불필요하게 심한 에너지 낭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굴복하는데 사실 그게 마음도 편하고 경제적 수익도 얻게 되는 일거양득의 상황이 됩니다. 환자분과의 갈등도 없게 되고요. 이것이 우습게도 친절의 한 가지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이것만은 양보를 잘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외래는 가끔 이런 분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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