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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3.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8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큰 병이 의심되어 꼭 검사가 필요한 분들이 시간적, 경제적인 이유로 검사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인데요, 예전 같으면 설득도 하고, 겁도 주고, 윽박지르기도 해서 제 뜻을 따르게 만들려고 했는데 요즘은 한번 더 설명드리는 수준에서 멈추고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분들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그러시는 것일 테니까 말이지요. 제가 그 사정도 모르고 제 주장만 한다면 그분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을지 모르니까요. 


또 하나 제가 지금까지 환자분들을 봐 드리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과도하게 환자분에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넘겨짚어 판단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청와대 민원 사건'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제 외래에 노년의 남성 환자분이 오셨는데 직업이 없고 복장이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아, 알코올 중독도 있었고요. 허리 디스크가 의심되어 MRI 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 보이더란 말입니다. 저는 바로 환자분의 입장에 빙의되어 제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아무래도 고가의 검사를 하시기에는 부담을 느끼실 것 같아서 "아버님, 지금 허리 디스크가 의심되어 약 0십만 원 정도의 MRI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하실까요?..... 만약 어려우시면 약 좀 드셔 보시다가 한 달 후에 찍어볼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환자분은 별 말없이 진료를 마치고 나가셨는데 며칠 후에 병원을 통해 청와대의 질의서가 날아든 것입니다. 외래에 동행하지도 않았던 환자분의 따님이 "00 병원의 000 의사가 환자의 외모만 보고 가난하다고 무시하며 필요한 검사도 해주지 않았다. 아프다는 사람을 약만 쥐어 돌려보냈다. 당장 000 의사를 징계해 달라."라고 청와대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소심하여 평생을 큰 죄짓지 않고 살아온 저로서는 나라님이 계시다는 청와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제 진심이 곡해되어 양심적인 진료 행위가 파렴치한 망나니짓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며칠 잠을 설쳤습니다. 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미 몇 년 동안 환자 진료를 해 온 제가 아직도 그런 오해를 만들었다는 것이 답답하기도 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병원의 권유대로 따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 진심은 그게 아니었으나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제 표현이 미숙해서 그랬으니 용서해달라."는 사과를 드리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따님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고 재차 신문고에 글을 올려 제 징계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사소한 사건이 귀찮아서인지, 대통령님의 아량이 넓어서인지 연이은 민원은 별 탈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진출처: SBS


이러한 사건들을 연이어 겪으면서 제가 느낀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제가 정말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제 진심을 그 정도로 못 알아들으실까요? 두 번째는 제가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이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제 표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더군요. 마지막으로는 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제대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뜬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심리학을 공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 이제는 이야기가 주제를 벗어나는데 진력도 나고 적응도 되셨을 줄 압니다. 제가 알아서 수위 조절을 해가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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