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벽돌 Mar 16.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9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그동안 제가 청년 의사 시절, 공감과 소통 능력이 미숙하여 겪었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일화들을 몇 개 들려 드렸습니다. 제 글을 읽어 본 어떤 분이 '독자님들 기분 상하니 이제 그런 구차한 글은 그만 올리라.'고 경고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글만 쓰고 있는 저에게 '소는 누가 키우냐?'고 일갈했던 그분(?)입니다. 제 아내이지요. 아무래도 요즘은 아내의 말을 잘 듣는 남편이 가정에서 평안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큰일을 잘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도 제 아내의 권유를 바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뭐, 이제 더 쓸만한 이야기도 떨어졌고 해서 핑계 김에 제 실수담은 여기서 줄이려고요. 제가 드렸던 이야기들이 비록 유쾌하지 못하고 때로는 심리적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하였겠지만 '그래도 유익했다'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도 그 경험들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저 같은 '모질이 의사'가 마음은 단단해지고 처세는 유연해지는 성장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진료실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그 경험은 나중에 기회 되면 다른 이야기로 엮어 보겠습니다. 제 아내가 '제발 좀 이야기 주제를 다잡고 샛길로 빠지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대학병원'이라는 단어를 들으신다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는지요? '대형 병원', '전문적인 의료진', '명의', '좋은 시설과 장비'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연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어떤 분들은 '3분 진료', '권위적인 의료진', '불친절', 혹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진료 예약'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먼저 생각하실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자주 질타당하는 대학병원의 캐캐 묵은 문제점들이지요. 여러분들도 거의 대부분 한 번 이상은 경험하셨고 그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병원들은 왜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환자를 무조건 많이 받아서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일까요?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아쉬운 것 없이 '갑'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병원 직원들의 오만 때문일까요? 


이미지 출처: 부산일보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2차, 3차 의료 기관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픈 환자분들을 처음부터 진료하는 1차 의료기관이 아니라 그런 곳들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의뢰받아 진료하는 기관이란 말이지요. 따라서 대학병원에 가려면 1차 의료 기관을 먼저 들러서 진료를 보고 더 상급 의료 기관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진료 의뢰서를 발급받아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문턱이 높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단은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 서는 것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짜증 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작부터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있는 환자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대학병원 외래에 들어서면 또 한 번 짜증이 밀려오는데요. 보통은 진료 대기실에 환자분들이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의 어깨에 부딪혀 꼼짝달싹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또 그 많은 분들이 진료를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니 바짝 구겨져서(?) 한두 시간 버텨야 하는 것이 일도 아닙니다. 거기다가 뭐 그리 하라는 검사는 많고, 다녀오라는 곳은 여러 곳인지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의사를 만나기 전에 벌써 지쳐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지요. 어렵사리 의사를 만나면 어떤가요? 그들이 친절하게 자세히 봐주던가요?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멈춘 채 환자를 물건 다루듯 하면서 몇 분만에 건성건성 진료를 마쳐 버립니다.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몇 시간을 버려 가면서 이 고생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마구 들게 되겠지요.


자료 출처: 영남일보


병원은 원래가 놀이동산이나 맛집처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기 어려운 곳입니다. 애초부터 신체나 정신이 불편해져서 찾아가는 곳이니 유쾌한 기분이 들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병원에서는 "반갑습니다." 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료를 잘 받았어도 환대받으면 안될 곳이고 다시 만나서 좋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곳에 방문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은 너무 많이 듭니다. 좋지 않은 일을 하러 가는데 그 과정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병원 문턱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그들의 마음속에 포화상태를 넘어선 짜증을 품고 있겠지요.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는 술 마시고 노래해도 즐겁지 않을 텐테요. 그런데 하물며 병원에 가는 일이라니 결과는 뻔하겠지요. 의사와 직원들이 섭섭한 얘기라도 한 마디 하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거나, 큰돈 드는 검사라도 하게 된다면 꾹꾹 눌러놓았던 분노가 폭발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은 항상 불만의 대상이 되기 쉽고 목소리 높이기 적당한 곳입니다. 마치 억울하게 감옥 가는 기분이 그럴 것입니다. 지은 죄도 없이 감옥에 들어가서 기쁘다고 덩실덩실 춤출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핑계 대지 마라. 그래도 어떤 병원 가면 직원들이 너무 친절하고 자상해서 걱정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그라들더라. 괜히 인격이 덜되고 불친절한 의사들이 그런 변명을 하더라. 당신도 그런 사람 아니냐?" 

제 아내가 옆에서 이렇게 따지네요. 네, 맞습니다. 이번 글은 주로 저의 변명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드릴 말씀이 좀 있거든요. 그럼 하나하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