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벽돌 Mar 17.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0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이 모든 대학병원의 모든 의사 선생님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그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 나름대로의 분석일 뿐입니다. 모든 병원에는 제각각 다양한 상황과 정서가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선호도가 다릅니다. 그것을 저의 짧은 경험과 부족한 안목으로 모두 파악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괜히 저의 의견을 여러분들이 만나시는 의사 선생님에게 대입하여 그분들을 크게 오해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1. 왜 3분 진료인가?

대학병원 진료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3분 진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덜도 더도 아닌 3분일까요? 사실 정답은 없고 이 근거가 맞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제가 35년 전부터 의과대학과 병원에서 근무하며 경험하여 추측한 바로는 이럴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어느 지역에서든 대학병원은 다른 병원들보다 규모가 컸고 의료진의 수도 많아서 의사들이 진료 영역을 전문화하여 자신이 전공하는 질환만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만 주력하다 보니 그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해당 지역에서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그 의사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지요. 환자들을 일차적으로 접하는 의사들도 치료의 난이도가 높아 자신이 직접 돌보기 어려운 환자들을 그 대학병원 의사에게 의뢰하면서 많은 환자들이 한 의사에게 몰리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그 옛날에는 의사 수도 적었고 전문화된 의사수는 더 적었기 때문에 이런 환자의 집중 문제가 더 심각했었습니다. 따라서 대학병원 의사는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했습니다. 소수의 환자를 철저히 진료하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들이 만약 긴 시간을 할애하여 한 환자에게 집중한다면 그들을 만나지 못해 치료의 시기가 늦어져 희생당하는 환자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YTN

대학병원에서는 보통 15분 단위로 진료 예약 시간을 잡아드립니다. 그런데 시작이 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15분 동안에 예약이 가능한 환자의 수를 보통 5-6명 정도로 잡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의사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이상의 환자들을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15분에 5-6명의 환자를 보아야 한다면 각 환자당 2분 30초-3분의 시간이 배분되게 됩니다. 따라서 '3분 진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3분이라는 시간은 컵라면 데울 때에는 지루하지만 몸이 아파 진료를 받을 때에는 무척 짧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누구든 자기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소위 '명의'를 만나러 갈 때에는 그들이 가능한 한 긴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문제를 철저히 파악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여유 있게 질문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도 상세하게 듣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되어 한 환자당 15분의 진료를 하게 된다면 보통 3시간의 한 타임 진료에 의사 한 명이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12명으로 감소하고 따라서 그 의사를 만나기 위해 대기해야 할 시간도 5배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해하시기 쉽게 아주 간단히 계산해서 진료의 대기시간도 5배로 연장되게 될 텐데요.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A라는 병에 걸려 B라는 명의를 검색하고 그에게 '3분' 진료를 보기 위해 외래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1개월 정도 걸린다면, '15분'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답게 15분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5개월도 기다릴 수 있어.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생각하실까요? 이것은 단순한 시간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A라는 병이 암과 같이 위급한 병이라면 어떨까요? 1개월 기다릴 것을 5개월 기다려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사이에 암은 온몸에 퍼져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만들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all or none"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연합 뉴스

현재는 그 옛날과 다르게 의사 수도 많이 늘어났고 병원 문턱도 훨씬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우수한 의사들이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일반 병원에도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옛날처럼 의사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의료 환경이 아니란 말이지요. 하지만 대학병원에 많은 환자가 몰리는 집중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학병원 의사 수준이 더 우수하겠지"라고 생각하시는 환자분들의 믿음은 여전하고, 특진비가 없어지는 등 대학병원 진료비가 보다 저렴해지면서 일반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감기 같은 병만 가지고도 대학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접할 기회가 늘어나게 되자 대학병원 의료진들과 그 의료 서비스에게 서운함과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왜 더 친절하지 않느냐? 왜 더 긴 시간 동안 보아주지 않느냐? 왜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것이냐?"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몰려드는 환자들 속에서도 여전히 의사들은 혹시 놓칠 수도 있는 큰 병을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실수 없는 완벽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그들의 환자들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그리고 또한 최대한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짧은 '3분'의 시간 동안 말이지요. (철저히 의사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라서 서운해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3분 진료가 이러한 원인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도 분명히 한몫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아래의 유튜브 방송에서 아주 이해하시기 쉬운 비유를 섞어 설명해 드리고 있기 때문에 소개해 드립니다. 한 번 시청해 보시면 의사들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8akbMRdJo

https://www.youtube.com/watch?v=kIiy_JwUtok

다음 글에서는 대학병원에서는 왜 그리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대학병원 의사들은 왜 그리 불친절하고 눈을 맞추지 않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