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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8.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1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란 제목의 글 중 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가능한 한 아래의 두 글부터 시작해서 전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목과 글의 내용이 영 어울리지 않아 어리둥절하실 것이라서요. 만약 축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신 분이 계시다면 우선 사과부터 드리고, 축산업만큼 중요한 의료계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https://brunch.co.kr/@osdlee/69

https://brunch.co.kr/@osdlee/158


앞의 글들을 모두 읽으실 만한 관심도 없고, 시간이 부족한 분이라도 가급적 아래 글만큼은 먼저 읽으시는 것이 이번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최근 몇 편의 글들은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과는 무관하게 '어느 의사의 변명'으로 일관되고 있으므로 다소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전 글들의 링크를 모두 달아드리니까 소 그림이 난무하여 목장처럼 되어버렸네요.)


https://brunch.co.kr/@osdlee/179


2. 왜 대학병원의 진료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인가?

지난 편에 예고드린 대로 오늘은 대학병원 진료 대기가 왜 수개월 걸려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수요-공급의 불균형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에 비해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특정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으므로 진료 예약의 경쟁이 심해지고 이 결과 차례가 밀리게 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 즉 건강 보험 문제가 크게 관여하게 되는데요. 정해진 의료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그것도 일관되게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학과 경제학에는 젬병이지만 오늘은 조금 무리해서 수요-공급의 그래프를 가지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사회 시간부터 익숙하게 접해온 수요-공급 곡선입니다. 약자를 우선 설명드릴게요. D(demand)는 수요, S(supply)는 공급,  P(price)는 가격, 그리고 Q(Quantity)는 수량입니다. 보시다시피 y축은 가격, x축은 수량을 표시합니다. 우선 수요 곡선(D1)을 보시면, 다른 조건이 일정할 경우 가격이 증가함에 따라 수요량은 감소할 것이므로 음의 기울기를 형성합니다. 반대로 공급 곡선을 보시면 다른 조건이 일정할 경우 가격이 증가함에 따라 공급량이 증가하게 되므로 양의 기울기를 갖게 됩니다. 수요와 공급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을 맞추게 됩니다. 그래서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는 지점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형성되는 가격을 균형 가격이라 합니다. 아주 이해하시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여러분들 잘 아시는 쌍꺼풀 수술을 하는데 의료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 가격이 백만 원에 형성되었다고 칩시다. 이 가격이라면 수술을 하는 의사나 수술을 받는 환자나 그러려니 하고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에서 쌍꺼풀 수술에 성공한 연예인이 자기 자랑을 하고 나자 대중들 사이에서 "나도 쌍꺼풀 수술을 받아 더 예뻐지고 싶다"는 유행이 생겨납니다. 성형외과 의사 수는 그대로여서 공급은 증가하지 않았는데 수요가 증가한 것입니다(D1->D2). 그러면 이번 기회에 돈 좀 더 벌어보자는 생각이 의사에게 들 것이고 그들은 가격을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으로 올리겠지요? 그렇게 가격이 상승하면 환자들은 "나는 이백만 원이라도 수술을 받을래"라는 사람과 "이백만 원이라면 수술 포기하고 맛있는 것 사 먹을래."라는 사람으로 나뉠 것입니다. 또한 의사들 중에도 쌍꺼풀 수술을 안 하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 수술을 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늘 것입니다. 쌍꺼풀 수술을 하는 의사 수가 증가하면 이 중에는 수술비를 덤핑 하여 더 싸게 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그래서 쌍꺼풀 수술비가 이백만 원에서 백오십만 원으로 낮아질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균형 가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P1->P2).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뻔히 보이는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건강보험이 의료 수가를 통제하지요. 따라서 의료비 상승을 거의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말이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이제 곡선 D1, D2, S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공급은 그대로이고, 수요는 증가하여 시장 경제라면 가격이 P2로 상승하여야 하나 정부가 강압적으로 가격을 P1으로 통제합니다. 균형 가격과 통제 가격에 불일치가 생겼지요? 쌍꺼풀 수술을 받고 싶다는 환자가 많아지면 수술비가 상승하여 그중의 일부가 수술을 포기해야 균형이 맞추어지는데 가격이 그대로이니 받고 싶은 사람은 모두 받게 되는 상황이 유발됩니다. 수술비가 그대로이므로 새로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는 의사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림에서 표시한 바와 같이 수요가 공급을 훨씬 능가하는 초과수요가 발생하게 됩니다. 즉 의사 1인당 해야 되는 수술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의사가 근무시간을 늘리지 않는 한 환자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입니다. 정부가 의료 서비스의 수가를 물가 상승률보다 낮게 강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국민들은 싼 가격으로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대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특히 많은 분들이 선호하시는 대학병원의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를 보게 될 때는 어떨까요? 명의라고 더 많은 진료비를 내시나요? 그렇지 않지요? 결국 수요-공급 불균형이 더욱 심해지면서 초과수요가 늘어나고 진료를 원하는 환자분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대기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해가 쏙쏙 되시죠?

이미지 출처: jtbc

외래 진료가 이러할진대 그 의사에게 받아야 하는 시술이나 수술은 또 어떨까요? 아시다시피 진료는 3분에 끝나지만 시술이나 수술은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의사 한 명이 해드릴 수 있는 건수가 더 제한적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수술은 수개월이 아니라 이제 수년 단위로 밀리게 됩니다. 특히 대학병원은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받고 오는 분들이 일반 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아픈 증상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한 달을 기다려 외래를 보았더니 수술받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우리 속담이 있지요? "아휴, 내가 앓느니 죽지." 이런 억울한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 타임 외래 진료에 약 50-60분의 환자들을 보는데 그중에 저에게 처음 오시는 신환이 최소 15-20분은 됩니다. 제가 일주일에 3 타임 외래를 보니까 신환이 한 주에 45-60분이 되겠네요. 그중에 타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듣고 수술을 위해 오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할 수 있는 수술건수가 6-7개이니 결국 수요가 공급을 훨씬 상회하게 됩니다. 수술 예약은 하루가 다르게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수술 예약을 잡아드리지만 그분이 과연 잘 참다가 저에게 수술을 받으시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참다가 저에게 수술을 받는 것보다는 다른 훌륭한 의사를 찾아가 빨리 수술받으시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환자분들에게 어떻게 말씀드리든지 욕먹기 딱 십상입니다. 

"1년을 기다리시다 수술받으시면 결과가 더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제 가족이라면 그렇게 권유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수술 잘하시는 의사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에게 가셔서 빨리 수술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유하면 몇 분은 제 말씀에 따르시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에이, 설마 그러겠어?"라고 생각 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분들은 매우 예민하신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런 분들에게 멱살 잡혀 욕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 가족이라 생각하고 충심으로 조언해 드리고 믿을 만한 의사까지 소개해 드렸는데 말입니다. 정말 억울하게도 아픈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불친절한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수술해드리는 것이 그래도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리시다가 수술받으라고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아무리 따뜻하게 말씀드린들 도대체가 1년 후에 수술을 해주겠다는 의사를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환자의 입장에 공감해주지 않는 냉정하고 권위적인 의사가 갑질을 한다고 욕할 것입니다.


자, 중간 점검을 해보겠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오늘 당장 아파 죽겠는데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했더니 한 달 후에 오라고 합니다. 일단 한숨이 나오겠지요. 그래도 잘 참아서 아픈 몸을 이끌고 날짜에 맞춰 외래에 갔더니 2시간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살살 뿔이 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잘난 의사 얼굴을 한 번 보게 되었는데 3분 동안 봐주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수술을 하라고 합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구나.' 싶겠지요. 진료실을 나와서 수술 일정을 잡는데 1년 후로 잡아줍니다. 이쯤 되면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대학병원의 서비스에 '그래도 만족스럽다."라고 아량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 계실까요? 만약 계시다면 성인군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학병원 진료실은 항상 소란스러운 것입니다. 서운해하시는 분들 중 일부가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불만 해소를 하고 가시거든요. 

(계속)


* 이런 또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제 이 글이 언제나 끝나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저 혼자만 재미있어하며 떠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건데요.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댓글로 말씀해 주세요. 빠르게 진도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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