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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19.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3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우리 허리병 씨의 사례를 보니 예전에 대학병원에서 당한 수모들이 새삼 다시 떠오르지요? 그럼 이제 왜 대학병원 외래 대기 시간이 긴 지 원인을 따져 보겠습니다. 보통 대학병원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밀려드는 환자분들의 진료를 원활히 하기 위해, 진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가능한 한 환자분들을 덜 불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몇 년 전 도입한 것이 의사를 만나기 전 간호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진 시스템입니다. 즉 먼저 환자를 보고 환자의 증상과 그 상태, 현재 앓고 있는 병, 과거에 앓았던 병이나 수술력, 약물 복용 기록이나 이상 반응 여부 등을 미리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꼭 진료를 보는 의사가 물어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당 과 전공의 등의 초급 의사나 간호사가 파악해도 충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환자를 직접 봐 드리는 담당 교수는 그만큼 환자 상태를 고려하여 올바른 진단이나 치료를 결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예진 시스템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인력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환자를 최대한 자세하게 진료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환자분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어떤 환자분들에게는 담당 교수를 만나기 전 문턱이 더 높아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진이라는 것을 마치면 기본적인 검사들을 미리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정형외과에서는 아프시다는 부위의 엑스레이 검사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사비를 미리 수납하셔야 됩니다. 진료비 수납하는 곳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셔야 된다는 말이지요. 이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루 많은 환자분들을 봐드려야 하는 대형 병원에서는 진료가 마쳐지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진료비를 받는 시스템을 운영할  없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추가 수납이 없는 환자분들이 그냥 가버리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진료나, 시술, 검사가 필요할 때마다 진료비 수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시간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이라면 소위 '하이 패스'라는 진료비 수납 방법을 등록하시면 됩니다. 환자분의 카드나 계좌를 병원에 등록하시면 그곳에서  진료비가 자동 수납되므로 그때마다 수납 창구에 들르셔야 되는 부담을 줄일  있거든요.

이제 수납을 마치고 엑스레이 촬영실 앞에 갑니다. 여기도 대기 환자들이 넘쳐나네요.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또 엑스레이는 왜 그리 많이 찍는지 이리저리 돌아눕기도 힘듭니다. 혹시 검사를 많이 해서 돈을 더 벌려는 병원의 못된 심산은 아닌지 의심도 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엑스레이는 한, 두장 찍을 때보다 방법을 달리 해서 여러 장 찍으면 환자분의 상태를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CT, MRI 검사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큰돈을 아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대학병원에서는 짧은 시간에 환자분의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상태를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치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대학병원은 2, 3차 진료기관인 경우가 많지요? 만약 여기서 오진하게 되면 이것을 가려낼 수 있는 병원이 더 이상 없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엑스레이 등 병원에서 사전에 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들을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과 최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간을 줄이고 싶으시다면 1, 2차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 등을 가져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이것들이 적절하게 찍혀 있다면 더 이상 찍어볼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내과에 가신다면 작은 병원에서 미리 한 피검사 결과지, 외과에 가신다면 병을 진단하기 위해 받았던 각종 검사 자료 등을 미리 정리해서 가져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의사를 만나기 전 기본 검사를 하는 것은 환자분들이 진료 업무를 빨리 마치고, 두 번 걸음 하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담당 의사를 만나고 엑스레이를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엑스레이 결과가 늦게 나와 담당 의사의 진료 시간을 넘기게 된다면 환자분은 그 결과를 듣기 위해 다른 날짜를 잡아서 다시 병원에 와야 합니다. 결국 더 불편합니다. "의사가 조금 더 기다려 주면 될 것 아닌가? 그 정도도 못하나?"라고 화내실 수도 있으나 대형 병원일수록 의사도 조정 불가능한 자기 스케줄이 있습니다. 외래가 끝난 다음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각종 교육, 회의에 불려 다닐 수도 있고(점심 시간에 교육, 회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작업하고 있던 연구가 있을 수 있고, 하다 못해 제때 식사라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같은 날 진료 시간에 맞춰 검사 결과가 나왔다 칩시다. 환자 한 분은 결국 의사를 같은 날 두 번 만나게 됩니다. 1인당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료 시간이 연장되면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집니다. 3-4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겠지요. 한 타임에 볼 수 있는 외래 환자수가 줄어드니까 그 의사를 다음번 만날 날짜도 기약 없이 뒤로 밀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대형 병원에서는 기본 검사를 담당 의사를 만나기 전에 일괄적으로 미리 시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환자분들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는 말이지요.



그럼 진료실 앞의 대기 시간은 왜 자꾸 늘어지는 것일까요? 왜 하필이면 진료 상담이 내 앞에서 연장되어 30분-1시간을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일까요? 이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3분 진료'로 말씀드리지만 사실 처음 뵙는 신환들을 3분에 모두 봐드리기는 힘듭니다. 어떤 분들은 진단하기에 혹은 치료하기에 다소 복잡한 질환을 가지고 계셔서 그분들에게는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하지요. 항상 부족하게 느끼시겠지만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드리려고 노력도 합니다. 만약 어느 날 그런 신환분들이 많이 몰려있다면 어찌 될까요? 환자 한 분에게는 1-5분의 진료 연장이지만 다 모이면 1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담이 연장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셔서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이런 대기 시간을 꼭 줄이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가능한 한 이른 시간으로 외래 예약을 잡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 이제 오랜 기다림 끝에 담당 의사를 만날 감격적인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제 진료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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